예배와 말씀
거듭남의 축복
모든 것을 가졌어도 영적으로 불안했던 니고데모처럼, 우리는 의심과 호기심 끝에 빛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으니 제2의 탄생을 받았는지 물어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모든 것을 가진 지성인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가운데서도 유대인의 관원으로 공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0절에서 예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부르셨으니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 19장 39절에 다시 등장할 때는 몰약과 침향을 백 근이나 가져온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자였습니다. 불편할 것 없이 인정받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러 밤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불안과 호기심이 그를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밤에 찾아온 질문은 믿음이 아니라 인식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라고 인정했지만 믿는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라는 집단 속에 자기를 숨겼습니다. 여러분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많이 알면 괴롭고 믿음이 힘입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으며, 그것은 시작일 수는 있어도 구원은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확신하지 않는 사람이 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믿음은 의심과 호기심 끝에 빛을 보며 자랍니다
신앙은 처음부터 믿는 것이 아니라 의심과 혼란과 극도의 호기심에서 출발합니다. 거부하고 불안해하다가 빛을 보고, 그 빛을 확인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깁니다. 니고데모도 3장에서는 호기심과 영적 갈등 속에 있었지만 19장까지 가서야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진리가 하나씩 깨달아지면서 성숙해져 갑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3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보는 열쇠가 거듭남에 있다는 본질적인 말씀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는 익숙하지만 죽음 이후의 저 세상에 대해서는 불안해합니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면 사람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영생, 지옥, 사랑, 미움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은 그 실재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천국을 되찾는 제2의 탄생
니고데모는 늙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느냐고 4절에서 즉각 반응했습니다. 이는 영적 통찰력이 없어 영혼의 일에 무지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땅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지, 영원의 세계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사람이 방황하는 까닭은 천국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국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해외 입양아가 부모와 조국이 있음에도 잊고 찾지 못하듯, 하나님을 잃은 채 우리의 삶은 외롭고 허무합니다. 육신의 탄생인 제1의 탄생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제2의 탄생이 필요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 구원받았다고 여기지 말고, 나는 거듭났는지 돌아봅시다.
- 이 세상의 익숙함에만 머물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영원의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봅시다.
- 죽음을 두려워하며 불안해하기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제2의 탄생을 구합시다.
- 잃어버린 천국과 하나님을 찾아, 말씀을 들으며 믿음이 자라도록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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