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합 1:1~11)
하박국은 악을 왜 내버려 두시는지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악을 반드시 심판하시며 침묵 중에도 일하십니다. 의인은 그 섭리를 믿고 악을 떠나 믿음으로 삽니다.
질문하는 선지자를 자상하게 대하신 하나님
하박국서는 선지자와 하나님의 대화로 이루어진 독특한 책이어서, 어느 신학자는 하박국을 구약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질문을 정죄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자상하게 응답하십니다. 어린 자녀가 자라면서 끊임없이 '왜?'를 묻듯, 신앙의 학습에도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불신의 의문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의문이며, 참된 믿음은 이해를 추구합니다. 불신자의 엉뚱한 질문도 정죄하거나 비웃지 말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 질문은 믿음으로 들어가려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을 물었지만, 하박국은 공동체와 시대의 불의를 물었습니다.
두 질문과 두 대답,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의인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포옹하다'라는 뜻이며, 마틴 루터는 그를 백성을 끌어안은 포옹자라고 풀이했습니다. 첫 질문은 왜 악인이 정의를 왜곡하도록 내버려 두시느냐는 것이었고,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악을 심판하겠다고 답하셨습니다. 둘째 질문은 왜 더 잔인한 바벨론을 쓰시느냐는 것이었고, 하나님은 바벨론도 공의롭게 심판받는다고 답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2장 4절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가 나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포로로 순순히 잡혀가라 하신 길에 살 길이 있었고,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과 종교개혁의 모토로 이어집니다. 하박국의 항의는 3장에서 찬양이 됩니다. 워런 위어스비 목사는 이를 염려자, 관찰자, 예배자로 표현했습니다.
하박국의 실망은 신실한 성도의 실망입니다 (2-4절)
하박국의 실망은 불신자의 실망이 아닙니다. 불신자는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왜 가만히 계십니까?' 하고 물을 수 있었고, 임박한 심판을 느끼는 의로운 마음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는 용기도 있었습니다. 또 그 실망은 자기 소원 때문이 아니라 율법을 받은 택한 민족이 율법을 내팽개친 데 대한 책임감에서 나왔습니다. 창조질서가 버려지고 정의와 기준이 무너지는 오늘, 우리도 이런 안타까움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침묵으로도 일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아들의 부르짖음에도 침묵하셨으나 그 침묵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나치 시대 쾰른 감옥 벽에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도 살아계심을 믿는다는 글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악의 심판을 반드시 포함합니다 (11절)
첫째 진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악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11절은 자기 힘을 신으로 여기는 죄인들이 바람처럼 사라지리라고 합니다. 역사 속에서 자기 힘을 신처럼 여긴 자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권선징악,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절대로 보호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악과 더불어 살 수 없고 반드시 악을 떠나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가는 섭리 (6절)
둘째 진리는 섭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우리가 원하는 바와 정반대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사납고 과격한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의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대하는데 더 악한 이들이 심판의 도구가 되니 실망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바벨론이 표범보다 빠르고 늑대보다 사나우며 독수리처럼 먹이를 채는 군대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증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크신 목적을 이루십니다. 바벨론에는 포로가 거주할 기회가 있었고, 피지배 민족의 문명을 존속시키는 면도 있었습니다.
온 세상을 보시며 역사를 엮으시는 하나님 (5절)
셋째 진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온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5절은 다른 나라들을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수호신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세상을 동시에 통치하십니다. 우리는 자기 시대와 문제만 보기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십자수는 뒷면에서 보면 엉망이지만 앞면에는 멋진 그림이 있습니다. 바벨탑 심판과 아브라함의 부르심, 모압에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을 통한 다윗의 출생은 하나님 안에서 연결된 사건입니다. 미얀마와 북한의 문제도 하나님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나라와 사람을 통해 바꾸실 것입니다. 역사는 곧 His story이며, 의인은 이를 믿고 믿음으로 삽니다.
삶에 적용하기
- 왜 이 불의를 그냥 두십니까 하는 질문을 불신이 아닌 알고자 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 불신자의 엉뚱해 보이는 질문도 비웃지 말고 존중하며 함께 고민합시다.
- 하나님의 침묵을 무관심으로 오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믿고 기다립시다.
- 하나님이 악을 반드시 심판하심을 믿고 악을 떠나는 삶을 삽시다.
- 이해되지 않는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관자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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