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다 (눅 3:15~22)
예수님의 자리를 넘보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고백했고, 낮아지신 예수님은 죄인과 같이 세례를 받으시며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메시아의 자리를 넘보기 쉽습니다
1959년 미국 입실렌티 주립병원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세 명의 환자가 있었습니다. 사회심리학자 밀턴 로키치는 이들을 2년간 관찰했고, 그 결과는 『입실렌티의 세 명의 그리스도들』이라는 책으로 나와 드라마와 영화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메시아 콤플렉스이며, 예수님의 자리에 자기가 앉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드러난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꿈에서 본 천국에서도 예수님은 성도들을 일어나 맞이하지 않고 보좌에 앉아 계셨는데, 일어나면 네가 내 자리에 앉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목회자들이 예수님의 자리에 너무 많이 앉아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진 것을 보여주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한 세례 요한 (15-17절)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보고 그가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던 때, 그는 자신을 높이지 않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고백한 그는 자신을 메시아로 추앙하려는 기대 앞에서 자기를 부인했고, 뒤에 오실 분을 소개하는 본연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하며 세 가지로 소개했습니다. 첫째,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십니다. 이 불은 속까지 태우는 성령 안에서의 세례로, 겉만 씻는 물세례와 달리 속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둘째, 예수님은 본질에서 나오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며 요한은 그분을 증거하는 자였습니다. 셋째,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다는 고백
신발끈을 푸는 일은 종이 하던 가장 단순하고 낮은 일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 일을 할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했는데, 이것은 듣기 좋으라고 한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 아무리 작고 사소해 보여도, 그 일을 맡기신 분이 누구인지 돌아보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저 역시 예수님의 신발을 빌려 신고 다니고 싶은 마음, 모임의 숫자에 따라 설교 준비 태도가 달라지는 마음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일을 하라고 나를 불렀느냐고 여기는 순간 우리는 자격 없는 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더 낮아지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을 아무리 낮추어도 예수님은 그보다 더 낮아지셨습니다. 요한이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다고 말했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조롱과 비난을 담당하셨고,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의 취급을 받아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시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원래 죄 가운데 있는 우리는 억울한 비난도 견디기 어려워하지만, 완전히 의로우신 예수님은 가장 처참한 죄인의 자리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고백은 겸손한 척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가슴에 품어야 할 합당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죄인과 같이 취급받으시려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21-22절)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사라지기 전, 예수님께서도 모든 백성과 함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는 죄인이 받는 것인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을 대신하시기 위함입니다. 요한이 말렸지만 예수님은 이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되 죄인과 같이 되셔서 죄인을 대신하는 메시아가 되신 것이 성육신의 의미입니다. 누가복음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다고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는 요한을 메시아의 반열에 올려놓거나 예수님의 신성을 오해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로 보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십자가를 향한 아들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내려오셨으며,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나타나신 장면이며, 죄인과 같이 취급받으시고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아들의 선택을 아버지께서 기뻐하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셔서 예수님이 분노가 아니라 온유한 심령으로 그 고난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희생의 길로 가는 아들을 보며 사랑하고 기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의 희생보다 더 큰 희생이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 안에 있는 메시아 콤플렉스를 돌아봅시다
- 성령 안에서 속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세례를 사모합시다
- 그리스도를 위한 작고 사소한 일도 감사함으로 감당합시다
- 우리 삶의 주인 자리에 낮아지신 예수님을 참된 메시아로 높여드립시다
- 억울한 비난 앞에서도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기억하며 겸손히 인내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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