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왕좌의 게임 1. 사울 뿌리뽑힌 나무도 잠시는 푸른 법이다 (삼상 13:5~14)
뿌리 뽑힌 나무도 한동안 푸르듯 사울은 왕관을 쓰고도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결핍과 사람의 시선, 영적 실패 앞에서 하나님께 돌아갈 때 인생의 주도권이 회복됩니다.
뿌리 뽑힌 나무도 잠시는 푸릅니다
8월 한 달 '왕좌의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사울, 사무엘, 다윗, 솔로몬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신 단어는 '주도권'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는 결정하는 머리가 되고 끌려가는 꼬리가 되지 않습니다. 군대 시절 태풍 뒤에 뿌리가 뽑혀 쓰러진 거목을 보고, 뿌리 뽑힌 나무도 한동안은 푸를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도 한동안은 충만하고 탁월해 보이지만 생명력은 점점 사라집니다. 사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왕관은 썼으나 하나님의 기름 부음과 관계를 잃었고, 붙들려던 권력 때문에 백성만 고통을 겪었습니다. 나는 뿌리 깊은 나무인지 뿌리 뽑힌 나무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결핍이 느껴질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중하십시오
사울은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잘생긴 데다 키도 컸습니다(삼상 9:2). 그러나 속에는 결핍이 많았습니다. 그의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 마지막에 11지파와 전쟁을 치르고 거의 괴멸된 가장 약한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왕으로 지명되자 '저는 가장 작은 지파 사람이 아닙니까'(삼상 9:21)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그는 사명이 부담스러워 숨고, 집으로 돌아가 소를 몰았습니다. 하나님이 약한 사람을 택하신 것은 그를 쓰시고 엎드려 기도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다윗은 결핍을 하나님께 가져갔고, 사울은 감당하지 못해 부러졌습니다. 조세핀 킴 교수와 김혜영 선교사는 상처와 장애가 하나님 손에서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된 예입니다. 고린도후서 12:9처럼 우리의 연약함은 은혜를 담는 빈 그릇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더 절박하게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선을 넘은 제사, 무시당한 설움이 낳은 조급함 (5-9절)
블레셋에는 전차 3만 대와 기마병 6천 명, 철제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초기 철기 단계라 모든 병사에게 철 무기를 보급하지 못한 열세였습니다. 사무엘이 정한 7일에 오지 않자 백성이 흩어졌고, 다급해진 사울은 제사장이 아닌데도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선은 형식의 선이 아니라 신앙의 선이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눈앞의 전쟁을 앞세웠습니다. 소심한 그가 대범해진 이유는 집권 초부터 용사들에게 무시당하고도 대응하지 못한 설움이 곰팡이 핀 귤처럼 마음을 잠식했기 때문입니다. 인정욕구와 관계 집착이 깊어졌고, 훗날 다윗을 향한 질투와 광기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사울은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관계의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시선을 마주하십시오
사울은 아말렉 전리품을 자기를 미워하던 지파들에게 뿌리며 잘 봐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셔도 사람이 좋아하면 하겠다는 영적 포퓰리즘이었습니다. 칭찬에 춤추는 고래는 아쿠아리움에서 조련사에게 길들여질 뿐이니, 박수소리도 영혼을 조종하는 어장관리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스팸 전화 끊듯 쉽게 물리치셨습니다. 직전에 세례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 인정받으면 사람들의 평가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집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시니, 그분 안에서 나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발견해야 합니다. 같은 음성으로 이웃과 탈북민, 이주민의 자존감도 세워 주어야 합니다.
실패가 드러날 때 십자가로 돌아가십시오 (11-14절)
사울이 제사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은 일부러 시간을 지연시키셔서 우리 영혼의 반응을 보십니다. 사무엘이 묻자 사울은 백성이 달아났고 사무엘이 늦었으며 '할 수 없이' 드렸다고 변명했습니다. 상황은 통제할 수 없어도 그에 대한 반응은 자신이 선택한 책임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사울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마지막 부탁도 사람들 앞에서 세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었고 성령이 다윗에게 임한 것을 알아볼 만큼 영적으로 민감했지만, 하나님이 받아주신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복음은 '기회'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도 아버지께 돌아갈 기회가 있다는 믿음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뿌리 뽑혀 쓰러졌어도 정원사가 다시 심으시면 뿌리 깊은 나무가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가 뿌리 깊은 나무인지 뿌리 뽑힌 나무인지 스스로 돌아봅시다.
- 결핍과 상처를 자기 연민에 묶어 두지 말고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가져갑시다.
- 사람의 박수와 인정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내 인생을 맞춥시다.
-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버리고 내 반응의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합시다.
- 실패가 드러날 때 돌아갈 기회가 남아 있음을 믿고 탕자처럼 아버지의 십자가로 돌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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