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그리스도의 율법(2)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으며,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키고 가르치며, 외형이 아닌 내면의 의로 살아야 합니다.
율법은 한 점도 폐하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 (17-18절)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행동과 생각이 구약의 말씀과 어긋나지 않고 완전히 일치한다는 뜻이며, 율법을 잘못 해석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이해를 바로잡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여겼지만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들의 믿음과 인생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은 세미한 부분까지 완전하고 영원하고 거룩하므로 한 부분도 없어지거나 소외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지극히 작은 계명도 버리지 말고 가르쳐야 합니다 (19절)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하나님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 사람의 타락입니다. 성경을 내 입맛에 맞게 떼어내고 재해석하며 세상과 타협하는 일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율법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소중히 다루고 지키며 담대하게 전해야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크고 작은 계명이 모두 율법의 강령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열심이면서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은 한쪽만 취하는 불균형입니다. 지키고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로 일컬어집니다.
듣기만 하는 신앙에서 행하고 가르치는 신앙으로
설교를 듣고 은혜받았다고 돌아가는 데 그친다면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사람에 비유하셨습니다. 복음을 알았다면 그것을 행해야 하고, 행할 뿐 아니라 가르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힘이 아니라 누가 훈련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말씀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복음을 기뻐하고 지키며 그것을 가르칠 수 있을 때 성숙한 신앙인이 됩니다.
의는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와야 합니다 (20절)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의이며, 사랑과 구제와 봉사와 전도의 근거도 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잔의 겉만 깨끗이 닦으면서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참된 나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버리고 작은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또한 기도와 헌금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드러냈으니 그 동기가 자기 영광에 있었습니다.
본래의 뜻대로 믿고 행하는 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본뜻을 말하지 않고 재해석한 의를 말했습니다. 여섯 가지 말씀에서 예수님은 옛사람에게 말한 바라고 인용하셨지만,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구약에 없었습니다. 성경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거나 합리화해서는 안 되며, 있는 그대로 그 뜻을 믿어야 합니다. 부분적이고 형식적인 의에 매달리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진 의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말씀을 듣는 데서 멈추지 말고 지키고 행합시다.
- 율법의 작은 계명도 소홀히 하지 말고 소중히 여깁시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돌아봅시다.
- 복음을 기뻐하며 내가 아는 말씀을 이웃에게 가르칩시다.
-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을 버리고 혼자 있을 때도 깨끗한 내면의 의를 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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