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십이지파 이야기(2)

2010.09.17하용조창세기 30:1-8

하나님은 허물 많고 출신도 부족했던 야곱의 열두 아들을 보석처럼 귀하게 여겨 축복의 지파로 세우셨습니다. 우리 또한 자격이 아니라 은혜로 하나님의 가슴에 품어진 귀한 존재입니다.

대제사장의 가슴에 새겨진 열두 보석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갈 때 두 어깨와 가슴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을 달았습니다. 각 보석은 모양과 가치가 모두 달랐지만 네 줄로 질서 있게 박혀 큰 그림을 이루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두 어깨와 가슴에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석처럼, 보석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고 가슴에 안고 다니십니다.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진노의 자식이었지만, 하나님은 태초부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여겨 주셨습니다.

허물과 부끄러운 출신을 덮으시는 하나님

야곱의 열두 아들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적절하지 못한 신분이었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라헬은 임신하지 못했으며, 실바와 빌하는 몸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계에도 기생과 이방인, 며느리였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조상의 학벌이나 가문이 구원을 주지 못하며, 불행한 출생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장남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지만 대제사장의 가슴에서 보석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 사건에서 살인을 저질렀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레위는 열두 지파에 들지 않았지만 제사의 직무를 맡은 특별한 지파로 세워졌습니다.

기다림을 잃은 라헬과 단의 탄생

라헬은 언니 레아가 아들을 계속 낳자 질투를 참지 못하고 야곱에게 자식을 낳게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야곱은 태를 막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며 화를 냈지만, 라헬은 자기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얻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기다림인데 라헬은 자존심과 오기로 움직였습니다. 야곱도 그 제안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단입니다. 단은 질투와 분노 속에서 태어났고, 야곱의 예언에서는 길가의 독사에 비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단 역시 제사장의 가슴에서 보석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유다와 납달리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

넷째 아들 유다는 형제들 가운데 찬송이 될 것이며 모든 백성이 그에게 복종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메시아가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르우벤이 차지할 보석 자리에 유다가 다시 박히게 되었습니다. 납달리는 산을 자유롭게 뛰노는 노인 암사슴에 비유되었고, 모세는 그를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지파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자라신 나사렛이 있는 납달리 땅과 갈릴리 바다 주변에서 복음과 기적이 흘러넘치는 모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자식도 쓰시고 자격 없어 보이는 자식도 들어 쓰십니다.

행한 대로가 아닌 은혜로 주시는 축복

사람들이 생각하는 축복은 행한 대로 갚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자격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행한 대로 갚으신다면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좋게 해석하고 감싸주듯,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가려 주시고 눈처럼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변호하고 감싸시기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슴 한복판에 보석처럼 빛나는 자신을 기억하고 다시 용기를 냅시다.

삶에 적용하기

  • 과거의 허물이나 불행했던 출신이 우리의 미래를 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붙들고 살아갑시다.
  • 자녀와 이웃의 잘못을 정죄하기보다 하나님처럼 감싸주고 격려하는 사람이 됩시다.
  • 조급함과 자존심에 밀려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며 기도로 나아갑시다.
  • 행한 대로 갚는 세상의 셈법 대신 은혜를 바라보며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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