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10) 곁에 계시던 분이 이제 안에 계십니다 (요 14:15~21)
제자의 길을 끝까지 걷는 힘은 나의 결심이 아니라 내 안에 오신 성령님께 있습니다. 곁에 계시던 예수님이 이제 성령 안에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주장하십니다.
열심과 사랑이 있어도 무너진 베드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 앞에서 "과연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뜻은 알아도 힘이 부족하고, 결심은 해도 며칠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는 열심도 사랑도 결심도 있었고 모두가 주님을 버려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곧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제자도의 길을 끝까지 걸을 힘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은 베드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담과 겟세마네의 밤 사이에,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에 이르는 긴 말씀으로 그 힘을 어디서 얻는지 가르치셨습니다.
명령하신 분이 보혜사를 구하십니다 (15-17절)
15절은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하십니다. 순종은 사랑의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조차 우리에게는 부족하고 뜨거워도 식기 때문에, 15절만으로는 또 하나의 율법적 숙제가 됩니다. 복음의 소식은 16절에 있습니다. 명령하신 예수님이 아버지께 구하시고,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십니다. 여기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문제만 칠판에 써 놓고 못 풀면 때리던 수학 선생님 같은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까지 낮아지신 분이니, 제자의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분임이 분명합니다.
보혜사는 같은 하나님이신 다른 분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를 한자로 옮긴 말입니다. 파라는 곁에 늘 함께라는 뜻이고, 클레토스는 불러냄을 받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영어의 카운셀러나 컴포터 같은 단어 하나로는 이 뜻을 다 담지 못하니, 보혜사는 좋은 번역입니다. '다른'이라는 헬라어에는 종류가 다른 것과 같은 종류 안의 다른 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입니다. 본질은 한 분이시고 인격은 세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예수님의 대리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성탄만큼 오순절 성령 강림에도 같은 비중을 두어야 합니다.
떠나시는 것이 유익한 까닭
첫 번째 보혜사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하셨지만 우리 속에 거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젊을 때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기적을 본다고 올바른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예수님을 못 박았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이용하려 했을 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제자들은 의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로 죄가 씻기고 부활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 뒤, 하나님의 영이 속에 들어와 이끄시는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의 오심은 하나로 연결된 사건입니다.
성령을 사양하는 것이 제자도의 실패입니다
많은 성도가 십자가와 부활은 믿으면서 내 안에 들어오시는 성령님은 "예수님만 믿겠습니다" 하며 정중히 사양합니다. 그러나 옛사람의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고, 겉모양만 따를 뿐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 절망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율법을 알았지만 힘이 없어 불순종했고,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남유다는 586년 바벨론에 멸망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에스겔 36장 26-27절로 새 마음과 새 영, 곧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도는 나의 결심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곁에 계시던 분이 이제 안에 계십니다 (18-21절)
예수님은 18절에서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다시 오겠다고 하십니다. 당시에는 스승을 잃은 사람도 고아라 불렀습니다. 이 말씀은 재림이 아니라 성령으로 제자들 안에 임하시는 사건입니다. 20절대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알게 됩니다. 글로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가족을 알듯 체험으로 아는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을 걷는 힘은 나에게서 나오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주장하심에서 나옵니다. 21절처럼 사랑과 순종이 맞물려 자라는 선순환도 일어납니다.
성령님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주장하십니다
성령님은 먼저 14장 26절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여 우리의 생각과 세계관을 바꾸십니다. 둘째로 로마서 5장 5절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부어 원수 같은 이에게까지 흘러넘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단수로 쓰였고 사랑이 그 첫째이며, 나머지 여덟 가지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셋째로 갈라디아 5장 16절대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의지의 능력을 주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하십니다. 은사나 체험은 그다음입니다. 전인격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이상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해지며, 자기 부인과 십자가가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이 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결심과 힘으로 제자의 삶을 살려 하지 말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따릅시다.
- 십자가와 부활뿐 아니라 성령님의 오심까지 온전히 믿고 사양하지 말고 받아들입시다.
-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나의 생각과 세계관을 바꿉시다.
-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과 원수 같은 사람까지 사랑합시다.
- 성령님을 따르는 의지로 육체의 욕심을 이기고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을 따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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