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양육
The Cell and the Coracle (1 Peter 3:9~12)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와 금식으로 자신을 훈련하는 '세포(cell)'와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나아가는 '코라클(coracle)'의 리듬으로 살아야 하며,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야 합니다.
작은 교회들은 새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 베드로 2:9-10)
베드로는 핍박으로 고통받던 소아시아의 작은 교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는 이들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들은 이사야 43장 20-21절과 출애굽기 19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또 '백성이 아니던 자'와 '긍휼을 받지 못했던 자'라는 말은 호세아가 자녀들의 이름을 바꾸던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옛 이름들을 새 교회에 적용하여, 이들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며 더 큰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선포합니다. 베드로 자신도 예수님께 반석이라는 이름을 받아 그 이름대로 자라 갔습니다. 우리도 주어진 새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세포는 욕심을 다스리는 훈련의 자리입니다 (1 베드로 2:11)
베드로는 나그네와 떠도는 자들에게 영혼과 싸우는 육체의 욕망을 멀리하라고 권합니다. 이것이 세포의 리듬입니다. 세포는 켈트족 수도사가 기도와 금식, 말씀 연구로 자신을 다스리던 작은 방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은 하루 열두 번 기도하며 영적인 근육을 길렀습니다. 한국 교회가 새벽기도와 회개, 제자훈련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훈련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훈련된 사람은 이방인 가운데로 보내집니다 (1 베드로 2:12)
베드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하게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악행한다고 비방하더라도 선행을 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코라클의 리듬입니다. 수도원장이 준비된 수도사에게 코라클에 오르라고 하면, 그는 노도 돛도 지도도 없이 바다로 밀려 나갔습니다. 어디에 닿든 그곳이 하나님이 보내신 곳이었습니다. 세포에서 훈련받고 코라클에서 보냄을 받는 이 두 리듬이 함께 있을 때 켈트 선교사들은 유럽을 다시 복음으로 세웠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보내졌는지 답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친구도 봉사도 모두 믿는 사람들 안에서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포로 부르심을 받았고, 또 코라클로 나아가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묻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보내졌습니까? 교회나 교회의 사역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내 그분의 통치와 영광을 드러내게 하신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 보십시오. 그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생각보다 성숙하지 못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시다.
Apply to Life
- 하나님이 주신 새 이름에 걸맞게 살아갑시다.
- 기도와 금식, 말씀 연구로 욕심을 다스리는 세포의 훈련에 힘씁시다.
- 우리를 보내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코라클에 오르는 마음으로 나아갑시다.
- 이방인 가운데서 선한 행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삽시다.
- 교회 밖에서 나를 보내신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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