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참된 예배(예배론)_설교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나의 모든 것을 그분께 드리는 일입니다. 형식에 굳어진 예배가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안에서 살아 있는 예배를 회복하고, 예배자로서 삶 전체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교회의 심장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심장이 잘 뛰면 피가 모세혈관까지 흘러 세포가 다시 살아나듯, 예배가 살아 있으면 교회는 비 맞은 잎사귀처럼 생기를 되찾습니다. 예배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높으신 그분께 나의 모든 것을 드려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을 뵙고 내려왔을 때 얼굴에 광채가 났던 것처럼, 참된 예배는 변화를 낳아야 합니다. 예배 순서를 해치우듯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형식에 굳은 예배는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너무 익숙해서 그 안의 굳어짐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주보의 어려운 말, 습관처럼 외우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찬송의 절수를 따지는 태도는 예배를 죽게 만듭니다. 오래된 교회에서 설교하고 돌아온 뒤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반면, 의사들이 카펫에 형식 없이 둘러앉아 찬양하고 기도하며 헌금을 나누던 모임에서는 예수님이 계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예배는 단순하고 솔직하게 나의 모든 것을 그분께 드리는 것이며, 형식은 그 뒤에 따라올 뿐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중보기도로 예배를 세우십시오
살아 있는 주일 예배를 회복하려면 먼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주일마다 예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가대를 세우고 예산을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예배의 순서 하나하나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중보기도 팀이 필요합니다. 한 대학생 집회에서 강사가 설교 전에 중보기도 팀에게 둘러싸여 기도받았는데, 그들은 진행의 순간마다 설교자와 기도자, 찬양과 간증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도가 교회에도 일어나면 교회가 변할 것입니다. 설교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께서 만져 주시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력 있는 말씀과 헌신의 향기가 예배를 살립니다
예배를 살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자장가처럼 들리거나 현실과 상관없는 설교, 헌금만 강조하고 교회에 머물라고만 하는 설교는 사람을 세우지 못합니다. 또한 예배에는 향기 나는 재물, 곧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옥합의 향유는 깨뜨려져 부어질 때 향기를 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셨듯이, 손해를 보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다. 편안하고 넉넉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찬양과 예배자의 삶으로 완성되는 예배
참된 예배는 눈물과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감격에 가사를 잇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손을 드는 찬양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예배의 핵심은 예배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배자입니다. 하나님은 목사, 장로, 집사라는 직분을 찾으시기보다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직분으로 나오지 말고 예배자로 나와야 합니다. 예배는 교회 안의 시간에 머물지 않고 삶 전체로 넓어집니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도, 주차를 안내하는 일도, 자녀를 가르치는 일도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던 것처럼, 예배자가 있는 곳에 예배가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주일 예배가 살아나도록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 예배 순서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자로 나아갑시다.
- 헌신과 희생으로 옥합을 깨뜨리는 예배를 드립시다.
-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습관처럼 외우지 말고 그 뜻을 새기며 고백합시다.
- 직분이 아니라 예배자로서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예배를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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