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판단이 아닌 사랑으로 (롬 14:1~16)
믿음의 강함과 약함은 사람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음식이나 절기처럼 본질이 아닌 일로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주님을 위하는지와 사랑을 따라 행하는지로 살아야 합니다.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모두 틀린 기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자신과 남을 강자와 약자로 나누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없으면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고, 실핏줄 하나만 막혀도, 잠시 숨을 쉬지 못해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자는 세상 기준으로 자신을 포장했을 뿐이고, 약자는 포장에 실패했을 뿐입니다. 이런 모습이 믿음의 영역에서도 나타나, 사람이 세운 기준으로 강한 믿음과 약한 믿음을 규정하고 약한 자를 판단합니다. 로마 교회에도 그런 갈등이 있었고,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복음으로 이 문제를 가르칩니다.
먹는 자와 먹지 못하는 자, 서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1-3절)
본문에서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믿음이 없거나 미성숙하다는 뜻이 아니라, 양심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로마 교회의 갈등 주제 하나는 음식이었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이방인 출신 성도들은 거리낌 없이 먹었고, 구약 정결법에 익숙한 유대인 출신 성도들은 먹지 못했습니다. 먹는 사람은 먹지 못하는 사람을 믿음이 약하다고 판단했고, 먹지 못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을 정조 없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우상의 실체가 없으니 먹을 자유가 있다고 하면서도, 먹지 못하는 연약함을 판단하지 말고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라고 합니다. 이웃집 제사 음식이 꺼림칙해 먹지 않을 자유도 그 사람에게 있으니 논쟁거리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음식은 중립적이니 걸림돌이 되지 마십시오 (13-14절)
바울은 먼저 믿음이 강하다는 사람들에게 서로 판단하지 말고 형제 앞에 걸림돌을 두지 않기로 결심하라고 권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 8-9절에서도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니 이 자유가 연약한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합니다.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균형을 줍니다. 14절의 말씀대로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고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부정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3-4절처럼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교회는 때로 공동체가 정한 기준을 잘 지키는 것을 믿음이 강한 것으로 여기고 남에게 강요했습니다. 헌금을 다림질해서 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판단하던 일이 그런 예입니다.
절기와 주일 문제도 확신은 각자의 몫입니다 (5절)
또 다른 갈등은 절기였습니다. 절기를 지키던 습관이 몸에 밴 유대인 출신은 특정한 날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방인 출신은 모든 날을 똑같이 여겼습니다. 바울은 각자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지라고 합니다. 교회사에서는 주일성수가 믿음의 강약을 재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청교도 시대에 기차로 수십 킬로를 와서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한 여성도를 징계했고, 박윤선 목사님은 주일에 선교사 환송을 나갔다가 배 시간이 늦어져 해고되셨습니다. 주일에 매식하지 않고 절제하는 것은 신앙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을 법으로 만들어 지키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설교자는 전도사 시절 주일 매식 금지 교회에서 몰래 식당에 간 일과, 외상으로 식사를 대접한 장로님의 일화를 들려줍니다.
일요일만 고집할 이유도 없습니다
일요일이 주일이 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며 역사상 처음 공휴일을 정한 일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전에 유대인 출신 성도는 안식일이 끝난 토요일 저녁에, 이방인 출신 성도는 부활하신 날의 새벽에 모였고 어느 시간이 좋은지를 두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공휴일이 생기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주 5일 근무로 이틀을 쉬는 시대가 되었고, 우리 교회는 코로나를 계기로 혼잡과 위험을 피하려고 토요주일 예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예배자들은 토요 예배를 하찮게 여기거나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슬람권은 금요일, 바라카 원전은 목요일을 주일로 지킵니다. 미국 동부의 토요일 저녁은 서울의 일요일 아침이라는 말처럼, 일요일 오전에만 성령님이 임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주님을 위해 행하는가, 사랑을 따라 행하는가 (6-9절)
인간이 정한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며, 바울은 더 중요한 두 가지 진리를 말합니다. 첫째는 주님을 위해 행하는가입니다.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먹지 않는 사람도 주를 위해 그렇게 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주가 되기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하면 존중해야 합니다. 내 기준대로 남도 해야 한다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판단은 주님이 하십니다.
사랑이 지식과 자유보다 앞섭니다 (15-16절)
둘째는 사랑을 따라 행하는가입니다. 음식 문제로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더 이상 사랑을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으신 형제를 음식 문제로 망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은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모두를 이롭게 한다고 합니다. 같은 장 12-13절에서 바울은 약한 양심에 상처를 주는 것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일이라며, 음식이 형제를 넘어지게 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된다면 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사랑의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를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일에서는 주님을 위해서인가, 사랑을 따라 행하는가라는 두 기준으로 주님의 백성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사람을 강자와 약자, 믿음 강한 자와 약한 자로 나누는 습관을 내려놓읍시다.
- 음식이나 절기처럼 본질이 아닌 일로 형제를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맙시다.
- 내가 지키는 방식을 남에게 올바른 믿음이라며 강요하지 말고, 각자 마음의 확신을 존중합시다.
- 주님을 위해 행하는 형제의 선택을 인정하고, 판단은 주님께 맡깁시다.
- 나의 자유가 연약한 형제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사랑의 길을 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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