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2010.09.17하용조요한복음 20:1-18

부활하신 예수님은 빈 무덤 앞에서 울며 머물던 막달라 마리아를 이름으로 부르셔서 나타나셨습니다. 믿음으로 부활을 받아들일 때 우리도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이 함께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빈 무덤을 가장 먼저 찾은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

부활의 아침 이른 시간에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가서 돌이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일곱 귀신에게서 벗어나 새 생명을 얻은 여인이었기에 예수님께 받은 은혜만큼 깊이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리아는 시신이 없어졌다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알렸지만, 아직 부활을 믿지 못했기에 그 일을 시신이 사라진 사건으로만 보았습니다. 믿음 없이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서로 다른 성품을 함께 쓰시는 하나님

요한과 베드로는 함께 무덤으로 달렸지만 성품이 달랐습니다. 요한은 먼저 도착하고도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차분히 관찰했습니다. 베드로는 뒤따라와서 앞뒤를 살피지 않고 무덤 안으로 곧장 들어갔습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중한 사람과 행동이 빠른 사람이 함께 있어야 교회가 바르게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다른 체질과 재능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각자의 탁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신이 빠져나간 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무덤

요한은 무덤 안에 세마포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누가 풀어서 흩어진 것이 아니라 시신만 세마포를 남겨 두고 빠져나간 것처럼 보입니다. 머리를 쌌던 수건도 세마포와 떨어져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 도둑이 훔쳐 갔다면 이런 모습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믿지 않았기에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성경의 모든 기적이 열리고 풀립니다.

이름을 부르시자 알아보게 된 마리아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다가 흰옷 입은 두 천사를 보았습니다. 천사가 왜 우느냐고 묻자 그는 주님을 누가 가져갔는지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곁에 서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로 여겼습니다. 슬픔이 크고 생각이 많으면 주님이 옆에 계셔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셨고, 그제야 마리아는 돌이켜 라뿌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울고 있을 때에도 주님은 거기 계십니다.

예배 가운데 함께 계시는 예수님과 천사

빈 무덤에는 돌과 세마포와 수건 외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주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교회에 와서 건물이나 프로그램보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천군 천사가 함께 화답합니다. 보는 사람이 있고 못 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니 우리는 보는 사람이 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새롭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 이에게도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다른 사람의 성품과 방식을 틀렸다고 여기지 말고 서로 다른 은사를 인정하고 함께 협력합시다.
  • 사랑은 조건과 결과를 따지지 않고 끝까지 주님 곁에 머무는 것임을 돌아봅시다.
  • 이성으로 풀리지 않는 말씀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부활의 기적을 주님께 맡겨 봅시다.
  • 예배와 기도 가운데 예수님과 천군 천사가 함께하심을 의식하며 드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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