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9) 잃어버림으로 찾는 목숨 (마 16:24~26)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제자의 입학 자격입니다.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고 순종할 때, 잃어버린 듯한 목숨을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찾습니다.
체험으로 아는 말씀, 제자의 입학 자격 (24절)
세상의 지식에는 머릿속에 쌓는 정보 지식과 몸으로 부딪혀야 아는 체험적 지식이 있습니다. 자녀 양육, 자전거, 수영은 책을 아무리 읽어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체험한 만큼 알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24절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훌륭한 신앙 고백으로 칭찬받은 뒤, 십자가를 만류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들은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가 아니라 앞에서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메시아의 길을 막았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주신 것이며, 졸업 자격이 아니라 입학 자격입니다.
자기 부인은 내 의지를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 (24절)
마태복음 26장에서 베드로는 저주하며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맹세했는데, 이 부인이 "자기를 부인한다"에 쓰인 단어입니다. 자기 부인은 나 자신을 향해 "나는 너를 모른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가장 큰 방해는 환경이나 제도가 아니라 주인 노릇 하는 나 자신입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 학대나 고행이 아닙니다.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던 마틴 루터는 고행이 자아를 더 강화한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건강, 물질, 재능이 무너져도 끝까지 남는 것은 의지이니, 자기 부인은 그 의지의 반납입니다. 존 스토트는 이를 "내 길을 내가 정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내려놓는 것"이라 했습니다.
빈손까지 버려야 하는 우리의 자아
한 사람이 영적 스승에게 인정받으려고 모든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와서 "빈손으로 왔습니다"라고 자랑했습니다. 스승은 "그 빈손까지 버리게"라고 답했습니다. 소유가 아니라 빈손을 자랑하는 자아를 버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선한 행실도 자기 의로 삼기 쉽고, 봉사와 헌신, 기도조차 자기를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도 빌립보서 2장 21절에서 동역자들이 모두 자기 일만 구하고 그리스도의 일은 구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의 일이지만 속은 자기 일이 된 것입니다.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없을 수 없습니다.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는 것 (24절)
갈릴리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액세서리나 교회의 상징이 아니라 끔찍한 사형틀이었습니다. 죄수가 자기 사형틀을 지고 가는 모습처럼,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의 행렬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과거형으로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내 옛사람의 죽음으로 간주하신 하나님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옛사람에게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 자기 부인이며 자기 십자가입니다. 목사님은 맞춤 전도 집회에서 자식과 남편과 손주 이야기만 하던 어머니들을 보며, 자기를 뒤에 두는 모습에서 자기 부인의 한 형태를 보았다고 합니다.
잃어버림으로 찾는 영원한 목숨 (25-26절)
25-26절에서 예수님은 같은 "목숨"이라는 단어를 두 가지 뜻으로 쓰십니다. 구하려다 잃는 목숨은 육신의 제한된 목숨이고, 얻게 되는 목숨은 온 세상보다 귀한 영원한 목숨입니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넘기면 진공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생명을 내어주시고 부활로 다시 찾으셨기에 하신 약속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내 잘못이나 나를 괴롭히는 고생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치르는 대가입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믿지 않는 시댁에 성실히 효도하며 받는 박대를 감당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의사의 칼이 깊은 것은 병이 깊기 때문이듯, 십자가는 우리를 정결한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치료입니다.
날마다 지는 십자가, 못 박히는 순종
누가복음 9장 23절에는 "날마다"가 덧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 큐티 때 십자가를 지고 시작해도, 회의실이나 시장이나 친구 만나는 자리에 두고 오기 때문에 매일 새로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있는데 우리의 십자가에는 없는 것은 못입니다. 목사님은 고난주간에 목사님들이 끄는 십자가 밑에 바퀴가 달려 있던 사진을 보고 웃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바퀴 달린 십자가라서 늘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처럼 못 박히는 길은 순종뿐이고, 순종은 못처럼 아픕니다. 그러나 그 못 박히는 순종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승리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주님을 따른다면서 주님을 끌고 가려 하지 않고, 주님의 등 뒤에서 따라가는지 돌아봅시다.
- 내 길을 내가 정할 권리와 나의 의지까지 주님께 돌려드리는 자기 부인을 결단합시다.
- 나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고, 옛 자아에게 "나는 너를 모른다"고 선언합시다.
-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치르는 대가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감당합시다.
- 날마다 십자가를 새로 지고, 못 박히는 순종의 길을 걸어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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