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달라질 수 있을까? (롬 12:1~2)
하나님 없는 낙원을 꿈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예배로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마음을 새롭게 할 때 인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체념의 감옥
중세 유럽의 군주 레이널드 3세는 동생의 쿠데타로 밀려나, 몸이 말라야만 나올 수 있는 문 없는 방에 갇혔습니다. 동생이 매일 최고급 요리를 넣어 주자 그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이 쪄 방을 나올 수 없게 되었고, 그의 인생과 비전과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그를 가둔 것은 형식상 동생이었지만, 본질은 절제하지 못한 탐욕과 체념이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물질과 성공을 쫓다 무력감에 빠진 사람도 체념의 감옥에 갇힙니다. 자유와 구속을 가르는 기준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태도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12장 2절의 세 단계로 그 감옥에서 나오는 길을 말합니다.
선악과는 예배의 자리였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은 선악과 사건으로 돌아가야 풀립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신이 아님을 기억하게 하는 곳, 마르바 던의 말처럼 인류 최초의 예배 처소였습니다. 또 하나님을 거절할 자유를 주어 사랑과 선을 진실하게 하려는 나무였다고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인용해 설명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신 세상은 좋았으나 간섭하시는 하나님은 부담스러워 열매를 먹었습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유산을 달라던 탕자와 같습니다. 열이 없으면 추위가 되듯 선하신 하나님이 떠난 빈자리에 고통과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 없는 낙원은 반복됩니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인은 이성과 과학으로 유토피아에 이른다고 믿었습니다. 헤겔은 정반합으로 역사가 진보한다고 했고, 마르크스는 그 유토피아를 공산주의 사회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과 원자폭탄 앞에서 그 꿈은 무너졌고 허무가 중심인 포스트모더니즘이 왔습니다. 창세기 11장 4절의 바벨탑도 노아의 홍수 트라우마 속에서 하나님 없는 피난처를 지으려 한 시도였습니다. AI와 화성 이주 같은 오늘의 이야기도 기술 자체는 악하지 않지만 맹신과 오만이 되면 심판을 부릅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는 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장 큰 강점이 가장 연약한 곳입니다
이 생각은 개인에게서 내 힘과 지혜, 재능과 인맥이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이 됩니다. 에스겔이 심판을 전한 두로와 시돈은 무역으로 성공한 뒤 교만해져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의해 잊힌 제국이 되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학벌 좋은 사람은 학벌로, 인맥 많은 사람은 인맥으로 넘어집니다. 우리는 약점은 보완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강점은 맡기지 않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도구로 씁니다. 해법은 선악과를 제자리에 돌려놓듯 창조자를 기억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1절은 젊은 날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하며, 가진 것이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고 엎드리는 것이 진짜 예배입니다.
주권을 인정할 때 주도권이 주어집니다
수많은 청년이 인생의 주도권이 없다고 말하지만,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백성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님이 왕이 되실 때 지혜와 힘과 권한을 주셔서 내게 주어진 기회와 하루가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과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합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그 예배가 일터와 공부하는 자리를 바꾸고 이웃과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 한계를 인정하며 주님의 힘과 지혜를 구하고 엎드리는 것이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누스는 감정을 뜻하는 카르디아와 달리 사고방식과 가치관, 진리를 뜻합니다. 주님과 같은 생각과 시점과 가치관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와 워런 버핏은 기업의 가치를 알고 투자해야 한다고 했는데, 가장 큰 투자인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모른다면 위험합니다. 내 경험을 빼고 예수님을 왜 믿는지 성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점검 질문입니다. 신앙의 펀더멘탈이 없으면 좋을 때는 교만에 깨지고 힘들 때는 공포에 흔들립니다. 하나님을 안 지식이 기생 라합과 가정을 살렸듯 말씀에는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분별도 이 순서 뒤에 옵니다.
광야에서도 홀로 예배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예배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디베료 황제와 빌라도와 헤롯, 영적 관심 없던 대제사장들의 암흑기에 광야로 스스로 나갔습니다. 강점이 통하지 않는 그곳은 그의 성소요 선악과 앞이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영적 분별력과 시대를 돌파할 힘을 주셨습니다. 설교자는 안식월에 은퇴를 준비하라는 음성을 들었고, 유기성 목사님의 말씀처럼 직분 뒤에 숨은 사람에게 은퇴는 두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순장이나 MC 같은 직분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 앉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지가 신앙의 진짜 생명력입니다. 그런 삶은 세상이 흔들 수 없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지 맙시다.
- 내가 강점이라 여기는 돈과 학벌, 인맥과 재능이 나를 넘어뜨릴 수 있음을 기억하며 조심합시다.
- 창조자를 기억하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거룩한 산 제사로 예배합시다.
- 내 경험을 빼고도 예수님을 왜 믿는지 설명할 수 있도록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기 원합시다.
- 직분과 사역이 없어도 홀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지 돌아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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