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신년 특새 36일차-부르심과 온전한 순종(창12:1-9)
하나님은 바벨탑으로 흩어진 인류 가운데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택하셔서 융단 같은 축복을 베푸십니다. 약속과 현실이 달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니, 우리는 약속을 붙잡고 예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심판 뒤에 한 사람을 택하신 은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쌓은 교만의 결과였고,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사람들을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흩어진 인류 가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바벨탑이 스스로를 지키고 높이려 했던 것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십니다. 노아 때의 구원이 단지 보존이었다면, 아브라함의 선택은 사람을 속사람부터 새롭게 변화시키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으로도 변하지 않는 인간을 아시기에 은혜의 언약으로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융단 저주를 덮는 융단 축복 (1-3절)
창세기 12장 1절부터 3절까지 복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창세기 3장부터 11장까지에는 저주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옵니다. 타락 이후 이 땅에 임한 융단 같은 저주를 하나님은 융단 같은 축복으로 덮으십니다. 3절의 땅은 타락 이후의 저주받은 땅을 가리키는 말인데, 하나님은 그 땅을 복으로 바꾸겠다고 하십니다. 이 복의 내용은 땅과 자손을 주시고, 그 둘을 통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내가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 자신이 이루신다는 주권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조건이 아닌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 (4-5절)
아브라함에게는 땅을 받을 조건도 자손을 얻을 조건도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날 때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가보니 그 땅에는 이미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일수록 자신이 살아계심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약속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반드시 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불가능을 인정할 때까지, 그리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때까지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셨습니다.
약속과 현실 사이를 예배로 채웁시다 (7-9절)
아브라함은 세겜에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신 곳에 제단을 쌓았고, 베델 서쪽과 아이 동쪽에 장막을 치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땅을 당장 차지하지 못했고 무서워 조용히 남쪽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이 나타나 주셨던 그 자리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예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깜깜하고 약속은 아직 멀리 있지만, 우리는 그 사이를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예배로 채워야 합니다. 그 예배 속에서 약속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약속은 한 사람,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6절과 17절에서 하나님이 자손을 복수가 아닌 단수로 말씀하셨다고 풀이합니다. 그 한 사람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의 율법은 아브라함의 약속보다 430년 뒤에 주어졌으므로,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다윗 왕국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계획으로 주셨습니다. 뒤에 온 말씀이 앞의 약속을 취소하지 않고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모든 약속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배반하는 인간을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시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융단 축복의 약속을 붙잡고 우리 삶의 현실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 현실이 약속과 다를 때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끝까지 기다립시다.
- 하나님이 나타나 주신 자리마다 예배의 제단을 쌓으며 나아갑시다.
- 우리가 받은 복을 흘려보내 세상의 복의 통로가 되기를 힘씁시다.
-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 안의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붙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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