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입니까? (눅 9:51~62)

2014.05.11이재훈누가복음 9:51~62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팬이 아니라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고백했다면 그 삶의 대가를 계산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순종하는 제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제자가 아닌 그리스도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에 제자라는 단어는 269번 나오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세 번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를 보고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고,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합당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이것을 잊혀진 제자도라 불렀고, 카일 아이들만은 팬인가 제자인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가 몰려들었을 때 만족하지 않으시고 소수의 제자를 택하여 그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모임의 규모보다 주님께 헌신하는 깊이가 더 중요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뒤에 예수님은 무리가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에 따른다고 지적하셨고, 어려운 말씀 앞에서 많은 제자가 떠나갔습니다.

처음 믿은 동기에 머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동기는 다양합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 습관처럼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고, 낙심과 절망 가운데 쉼을 얻으려고 나온 사람도 있으며, 인생의 성공을 구하여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동기가 온전하지 않더라도 나아오는 이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처음 믿은 이유에만 국한한다면 중대한 누락과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면 예수님의 제자의 삶 전체를 깨닫고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마리아를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53-55절)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멸망시키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 속에 있었던 정복주의적 태도와 같습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호소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이 그러한 예입니다. 교회를 환영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무력과 보복으로 맞서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는 온유, 인내, 겸손, 사랑, 자비의 성령의 열매로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은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맹목적 열광이 아니라 대가를 계산하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57-58절)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 따르겠다고 나섰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자의 길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존 마일은 교회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이들은 좋은 의도를 가진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7-28절에서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탑을 세우기 전에 비용을 계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계산은 이기적인 계산이 아니라 선물을 받은 자로서 살아갈 삶의 대가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 대가는 우리를 착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풍성하고 깨끗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변명 뒤에 숨은 속마음을 돌아봐야 합니다 (59-62절)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을 때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에 따르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예수님은 그 속마음을 보셨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장례를 핑계로 미루는 것은 지연과 변명이며, 따르고 싶지 않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하는 변명보다 속마음을 예수님은 간파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긴박성은 물러설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순종을 요구합니다.

세상의 진상을 알면 '하지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하지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고는 '하지만'으로 그 고백을 부러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수렁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안다면 구해 달라고 하면서도 '하지만'을 말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세상의 상태를 안다면 우리는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세주만 필요하다며 영접하고 주님으로 순종하는 일은 원할 때까지 미룰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 안의 이단입니다. 명목상의 신앙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우리의 태도를 직시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가 예수님의 팬이 아니라 제자로 함께 모여 있는지 돌아봅시다.
  • 세상을 정복하려는 종교적 교만을 내려놓고 온유와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시다.
  • 제자의 삶이 요구하는 대가를 계산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결단합시다.
  • 순종을 미루거나 '하지만'이라는 변명으로 고백을 부러뜨리지 않도록 우리의 속마음을 살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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