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믿음으로 미래를 열라 (사 43:16~21)
믿음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로 맞이하는 삶입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새 일을 행하실 창조주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미래를 엽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기뻐하는 믿음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입니다.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옙스키는 사형 직전에 죽음의 고통보다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불안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고, 올바른 평가는 오직 하나님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약속을 따라 걸었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난 사람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적은 우리가 스스로 만든 확신이며, 믿음의 사람은 내일을 한숨이 아니라 숨막히는 기대로 맞이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첫째 태도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은 확신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의 확신이든 실패의 확신이든 믿음의 삶을 가로막습니다. 성공이라 여긴 것에도, 실패한 것에도 죄가 숨어 있을 수 있으므로 우상숭배와 죄의 습관을 철저한 회개로 끊어야 합니다. 로마 개선장군의 행렬 뒤에서 노예가 외쳤다는 '메멘토 모리',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처럼 성공에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공했다고 사랑하시거나 실패했다고 버리시지 않으며,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기억을 점검하고 죄를 끊기를 권합니다.
새 일을 행하실 창조주를 신뢰하라 (19-20절)
둘째 태도는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사야 44:21, 46:9 말씀대로 기억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변치 않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며, 그분의 창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래를 다 알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지며, 아우구스티누스도 하나님이 앞날을 미리 알리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1장에서 모세가 해석한 가나안 정탐도 두려움에서 나왔고, 확실성을 얻으려 했지만 두려움만 커졌습니다. 하나님은 청사진 대신 나침반을 주시니, 한 걸음씩 걸어야 합니다. 바벨론에 멸망할 어두운 때에도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약속하셨고, 사람은 광야를 피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길을 내십니다.
찬양으로 미래를 맞이하라 (21절)
셋째 태도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미래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은 목표를 이루었는가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찬양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상황 속에서도 찬양하면 시험에 합격한 것이어서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찬양을 포기하면 시험이 계속됩니다. 믿음의 찬송은 불확실한 미래를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요게벳처럼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라
모세가 태어났을 때 바로는 히브리인 아들을 모두 죽이라 명했습니다. 요게벳은 석 달 동안 숨기다가 갈대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기를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어 그 미래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모세만큼 불확실한 미래는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 자녀의 문제, 가정과 사업, 이 나라 민족도 그런 상황일 수 있습니다. 한숨으로 맞이할지 숨막히는 믿음으로 기대할지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참 주인이시며 참 부모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데 달려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불확실한 내일을 한숨과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와 믿음으로 맞이합시다.
- 한 해를 마치며 기억을 하나님 앞에 점검하고, 과거의 죄악과 죄의 습관을 철저히 끊읍시다.
- 성공과 실패의 기억에 매이지 말고, 새 일을 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 광야와 사막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미래를 맞이합시다.
- 요게벳이 모세를 맡겼듯이 자녀와 가정, 사업, 나라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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