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Again the Fire_설교
부흥은 교회의 규모나 교인 수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갈급함과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절망과 목마름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간구합시다.
부흥은 숫자가 아니라 내면의 갈급함에서 시작됩니다
한국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인 지 120년이 지나 교회도, 교인도, 선교사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커질수록 우리 마음에는 허전함과 고통이 남아 있고, 많이 이룰수록 오히려 허무함을 느낍니다. 이대로 한국교회가 가도 되는지, 부흥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자성하는 마음으로 내면의 세계를 돌아보고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살피는 것이 바로 오늘 부흥의 시작입니다.
부흥은 절망과 위기의식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의 기폭제는 성령 강림이었고, 그 오순절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구약 요엘서의 예언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오순절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제자들의 절망에서 싹텄습니다. 부활 이후에도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빛과 어둠의 자리에서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로마의 압제를 받던 피압박국이었고, 사상과 종교, 사회는 우상과 물질주의, 무질서로 공백 상태였습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고난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잘 된다고 착각하게 하는 풍요입니다.
열흘의 기도는 처절하고 깨어진 기도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500여 형제라고 하지만, 실제로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 사람은 120명이었습니다.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이 순종하지는 않았고, 그중 소수가 순종하여 열흘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안일한 기도가 아니라 가슴을 찢는 처절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한 아이가 열 달을 잉태되듯, 이 열흘은 고통을 잉태하며 정결해지고 모든 수식어가 빠져 순수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모임보다 진정으로 부흥을 사모하는 소수의 눈물이 하나님을 움직이게 합니다.
마음이 찢어질 때 성령의 바람과 불이 임합니다
성령의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실제로 들리는 바람이며, 불도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임하는 불입니다. 이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1996년 2월 캐나다 북부의 작은 마을에 있었습니다. 중보기도자들이 부흥을 위해 기도하던 중 사람들이 집에 쌓인 물건들을 가져왔고, 주민들은 함께 모여 그것들을 태웠습니다. 그 뒤 마을의 10대 자살과 마약, 알코올이 사라지고 도시 전체가 변화되었습니다. 우간다에서도 1990년대 말 소수의 기도자들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에이즈에서 살아난 사람이 372명이라고 보고되었습니다.
성경만큼 믿고 영적 기대치를 낮추지 맙시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제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이해하고, 현실이 어렵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믿지 않으려 합니다. 오순절은 이 제한을 깨뜨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성과 경험이 닿지 않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어린아이처럼 믿고 받아들일 때, 교회는 변화되고 민족은 새로워지며 사회도 바뀝니다. 우리의 계획은 내 수준에서만 세울 수 있지만, 하나님은 나처럼 작지 않으시니 영적 기대치를 우리 수준으로 낮추지 맙시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 마음의 무뎌진 감각과 위선을 솔직히 돌아봅시다
- 금식하며 회개하는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 우리의 한계와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깁시다
- 성경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믿읍시다
- 영적 기대치를 낮추지 말고 성령님을 간절히 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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