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2) 붙어있음, 그것이 곧 열매이다 (요 15:1~8)
제자도의 본질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붙어 있느냐입니다. 이미 그리스도께 붙들린 가지로서 그분 안에 머물 때 열매가 맺힙니다.
로마서 6장의 연합을 포도나무로 봅니다
지난주 로마서 6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를 근거가 우리의 열심이나 결단이 아니라 갈보리에서 이루어진 사건임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우리는 이미 그분과 연합된 존재이며, 이 사실을 여기고 날마다 받아들이며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은 같은 진리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보여 줍니다. 1절부터 11절까지 '붙어 있으라', 곧 헬라어 '메노'가 열한 번 반복됩니다. 그러므로 제자도의 본질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붙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거짓 포도나무가 아닌 참 포도나무 (1절)
원문을 직역하면 '나는 포도나무이다. 그리고 참된 것이다'이며, 거짓 포도나무와 참 포도나무를 대조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황금 포도나무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돈이 생길 때마다 기부하여 포도알과 덩굴손과 가지를 만들어 갔습니다. 포도나무는 하나님이 택하신 공동체를 상징했지만, 구약의 선지자들은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들포도나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대비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참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분께 연결되어 참 열매를 맺도록 부름받은 가지라고 하십니다.
자르심과 손질하심은 사랑의 손길입니다 (2절)
2절에서 농부는 열매 없는 가지를 '아이레이', 열매 맺는 가지를 '카타이레이'로 다룹니다. 아이로에는 '들어올리다'와 '제거하다'라는 두 뜻이 있습니다. 포도는 땅에 처지면 햇빛을 못 받고 병균에 약해 오래 가지 못하므로, 농부는 처진 가지를 들어올려 유인하고 불필요한 생장점은 잘라 적심합니다. 이는 냉정한 제거가 아니라 모든 영양분이 포도송이로 가도록 가지를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지만, 히브리서 12장 6절대로 주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연단하십니다. 가지치기는 우리가 이미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붙어 있으라, 이미 붙들린 가지로 살라 (4-5절)
4절에서 '머물러 있으라'가 처음으로 명령형으로 나옵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예수님께 붙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로 붙어 있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주장하라는 뜻이며 로마서 6장의 '여기라'와 같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에서 가지는 이미 붙어 있고, 이 명령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5절의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씀이며,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될 때 주님께 붙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도 자신이 붙잡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말씀과 기도 안에서 소원이 바뀝니다 (6-7절)
6절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존재는 쓸모없는 가지처럼 불에 던져지는 영원한 멸망에 이릅니다. 7절은 주님 안에 머무는 길이 말씀과 기도임을 보여 줍니다. '원하는 것을 구하라'는 뒷부분만 붙들면 안 되고,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앞부분에 방점을 두어야 합니다. 말씀이 머물면 우리의 소원이 바뀌어 주님의 뜻과 소원을 구하게 되고, 그렇게 구한 것은 이루어집니다. 응답이 늦어질 때는 구하는 제목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지 살펴야 합니다. 뜻에 맞는데도 지체된다면 더 겸손하고 간절하게 하시고 응답의 기쁨을 크게 하시려는 것이니, 지체는 거절이 아닙니다.
붙어 있음이 곧 열매입니다 (8절)
8절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제자의 모습이며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길이라고 밝힙니다. 제자의 본질은 어떤 활동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함으로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최근 한 사업가는 사업이 잘되어 계좌에 돈이 쌓여 가는데도 기쁘지 않고, 그 돈이 자신에게 독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재물도 예수님 안에서 해석되지 않으면 기쁨과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붙어 있으라는 명령은 부담이 아니라 선물이며 축복이며 기쁨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에게 붙어 있느냐를 먼저 돌아봅시다.
-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농부이신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로 받아들입시다.
- 그리스도께서 이미 나를 붙잡고 계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가지로서 살아갑시다.
- 말씀과 기도로 주님 안에 머물며 내 소원이 주님의 뜻으로 바뀌기를 구합시다.
-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날마다 드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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