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영적전쟁 13] 깨어서 기도하라 (엡 6:10~20)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그 응답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것은 악한 육신을 이기고 영의 간절한 소원을 살려내는 일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응답받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몸이 살 수 없듯이,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는 영혼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기도가 살아 있다는 것은 영적 생명이 살아 있다는 뜻이며, 하나님과 나 사이의 기도가 얼마나 생생하고 진실하며 친밀한지가 영적 생활을 결정합니다. 기도의 결과는 우리의 의지, 행동, 감정이나 정교한 논리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사역에 근거할 때 기도가 응답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은 주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새 생명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온전히 모셔 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할레스비 목사님은 기도를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 드리는 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예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3장 1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온전히 계시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처음 영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가 생각과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살아 계시는 것이며, 그것이 살아 있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주님은 마음 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두드리심에 마음 문을 열어 드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온전히 살아 계셔야 하나님과 온전히 교통할 수 있습니다.
잠든 제자들은 육신의 잠 이전에 영혼이 잠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하신 뒤 조금 떨어져 기도하셨고, 여러 번 돌아와 그들을 살피셨습니다. 피곤해서 자는 잠은 창조의 질서이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잠은 영혼의 잠입니다. 사단은 제자들의 약한 육신을 이용했습니다. 베드로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깨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시몬이라 부르며 책망하셨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도 영혼을 잠들게 하는 세 가지 적이 나옵니다. 순진은 나는 괜찮다는 태도이고, 나태는 더 자야겠다며 깨기를 싫어하는 것이며, 거만은 모든 일을 내가 알아서 하니 하나님은 간섭하지 마시라는 태도입니다. 제자들의 잠은 영이 육에 져서 든 잠이었습니다.
깨어 기도함은 악한 육신을 이기고 영의 소원을 살리는 것입니다 (18절)
마음은 간절한데 육신이 약하다는 말씀에서 마음이라고 번역된 말은 영을 뜻하는 퓨뉴마입니다. 우리 영 안에는 기도하고 싶고 하나님과 오래 함께하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에게도 그 소원은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악한 육신이 그 소원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신은 몸이 아니라 영혼 속에 있는 부패한 옛 본성을 가리킵니다. 로마서 8장 7절의 말씀처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적대하고 그분의 법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이 약하다는 말씀은 동정이 아니라 그 안에 악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이 육신을 동정하지 않고 성령을 의지하여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며, 그렇게 영의 소원이 살아나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 옛 본성을 협력자로 삼아 기도를 방해합니다.
기도에 깨어 있으면 시험에서 승리하고, 기도에 실패하면 무너집니다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해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졌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깨어 기도하셨기에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말을 타고 가다가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말에서 내려 길바닥에 무릎 꿇고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동물원을 구경하다가 동물을 보는 기쁨보다 예수님을 더 기뻐했는지 돌아보며 구석 벤치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육신의 본성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며, 바쁘다는 핑계를 만듭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있듯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바쁨은 핑계일 뿐입니다. 영적 싸움의 판세를 결정하는 것은 기도의 영이신 성령을 의지하여 영이 육신의 약함을 깨고 일어나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을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영혼의 날개를 달아 주시는 축복으로 받아들입시다.
-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온전히 모셔 드립시다.
- 바쁘다는 핑계를 내려놓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며 시간을 냅시다.
- 성령을 의지하여 옛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영의 간절한 소원대로 깨어 기도합시다.
- 제자들처럼 영적인 잠에 빠지지 않도록 날마다 깨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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