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사사기 강해[4] 뜻밖의 선택 (삿 3:12~17, 27~30)
하나님은 왼손잡이 에훗 같은 뜻밖의 사람을 구원자로 택하십니다. 그 선택의 절정은 십자가이며, 우리도 오직 은혜로 뜻밖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인물, 에훗
15년 전 제가 2대 담임 목사로 취임했을 때 기독 언론의 기사 제목은 '이재훈 목사, 그는 누구인가? 뜻밖의 인물'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본문의 에훗은 그런 질문을 더 많이 받았을 사사입니다. 첫 사사 옷니엘은 유다 지파, 갈렙 가문에 기럇세벨을 정복한 능력도 검증된 흠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에훗은 가나안 정복에 기여가 없고 미약했던 베냐민 지파였고,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표현도 없으며, 왼손잡이라고 강조됩니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어서 왼손잡이는 예상하지 못한 인물임을 부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모압 왕 에글론을 암살한 사람입니다.
뜻밖의 나라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다 (12-14절)
옷니엘이 죽자 백성은 '또다시' 악을 행했고,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셔서 18년간 지배받게 하셨습니다. 죄악에는 새로운 것이 없어서 거짓과 부정, 하나님을 대적함과 우상 숭배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모압은 광야와 가나안 정복 때 오히려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던 약한 나라이자 롯의 후손인 먼 친척이었습니다. 그런 모압이 암몬 등과 힘을 합해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를 정복했습니다. 먼 메소포타미아 왕을 데려오신 첫 사사 때와 달리, 이번에는 두렵지 않던 작은 나라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형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언제나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상은 빼앗아 가고 은혜는 더 끈질기다 (15절)
15절의 '조공'은 히브리어 '민하'로, 레위기에서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의 제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드릴 곡식이 이방 왕에게 바쳐졌고 에글론은 18년간 그것을 먹으며 비대해졌습니다. 바알을 섬기던 이들이 에글론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우상은 결코 주지 못하고 빼앗아 가고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백성의 부르짖음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고통 속의 신음이었지만,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죄는 끈질기나 은혜는 더 끈질깁니다. 8년의 괴로움 뒤에 40년, 18년의 괴로움 뒤에 80년의 평온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징계보다 은혜 베풀기를 더 기뻐하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선택과 정반대로 일하시는 하나님
에훗은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치는 심부름꾼이었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굴욕적인 일이었고, 모압 왕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아 아무도 경계하지 않을 사람이었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갔을 때 아버지는 들에서 양을 치는 막내를 볼 필요도 없다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를 택하셨습니다. 사람은 운동회에서 잘 뛰는 아이부터 뽑듯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을 먼저 고르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녀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처럼 하나님은 세상의 어리석고 약한 것들을 택하십니다.
암살은 인정하지 않으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 (27-30절)
16-26절은 에훗이 직접 만든 양날 단검을 오른쪽 허벅지에 차고, 경호원의 몸수색을 피해 에글론을 암살한 과정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이 거짓과 암살을 인정하신 것은 아니며 성경은 암살의 정당화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굽은 막대기로도 곧은 선을 그으시지만 막대기가 곧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사 시대는 폭력이 난무한 시대여서 사사는 그 시대 사람들의 평균치를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와 피로 얼룩진 현장에 함께하십니다. 사람이 고를 만했던 에글론은 하루 만에 무너졌고, 시편 2편 4절처럼 하나님은 대적하는 자를 비웃으십니다. 에훗은 나팔을 불며 '여호와께서 원수를 너희 손에 주셨다'고 하여, 하나님이 행하셨음을 인정했습니다.
십자가, 뜻밖의 선택으로 오신 구원자
에훗이 죽자 백성은 사사기 4장 1절처럼 또다시 악을 행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폭군은 무너뜨려도 마음속의 우상과 폭군은 제거하지 못한 것이 인간 지도자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죄와 사망의 세력, 곧 마음의 대적을 무너뜨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베냐민에서 무슨 구원자가 나겠느냐던 시선처럼, 사람들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을 그렇게 평가했습니다. 칼로 로마를 무너뜨릴 구원자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연약한 아기로 오셔서 칼에 맞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에게 거리끼고 헬라인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에훗의 나팔처럼 복음의 나팔은 이미 주신 승리를 알리며, 그 소리를 듣고 모인 이들이 교회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가 눈길을 주지 않던 사람과 부끄러워하던 연약함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 고통의 세월 가운데서도 징계보다 은혜를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평안의 뜻을 믿읍시다.
-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우상을 돌아보고, 우상이 약속한 것이 거짓임을 기억합시다.
- 사람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녀와 이웃도 하나님이 택하실 수 있음을 기억하며 존중합시다.
-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복음의 나팔 소리에 응답해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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