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도우라 (신 15:1~15)

2017.05.07이재훈신명기 15:1~15

하나님의 백성은 가난한 이들을 인색하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도와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나눌 때 하나님의 복이 우리와 세상에 흘러갑니다.

가난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백성을 드러냅니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받은 후원금의 절반을 교회에 헌금하고, 그 절반의 절반을 고아와 과부를 위해 구제했으며, 나머지 절반의 절반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동료 선교사가 입양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걱정하자 그는 내일 일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를 돕는 선교사였을 뿐 아니라 가난하게 살았기에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경제 위기보다 깊은 문제는 가치의 위기입니다.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을 먼저 쓰고 보이지 않는 손을 말했듯이, 경제는 도덕적 가치에 부합할 때에만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제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가난의 원인보다 가난에 대한 우리의 조치가 중요합니다 (7-11절)

가난의 원인에는 자연적, 개인적, 구조적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따지기 전에 가난에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율법 전체는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도록 강조하며,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곧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여주는 시험지가 됩니다. 율법은 추수할 때 밭 모퉁이를 남겨 가난한 이들이 줍게 했고, 3년마다 소출의 십일조를 구제에 쓰게 했습니다. 안식년에 저절로 자란 곡물은 가난한 자들의 몫으로 거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5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7년마다 빚을 탕감하고 종을 풀어주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문은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닫거나 주먹을 쥐지 말고, 손을 벌려 필요한 것을 넉넉히 빌려주라고 말씀합니다.

구별된 평등은 사랑의 법칙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율법은 모든 사람에게 강압적으로 획일적인 평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장 칼뱅은 이를 사랑의 법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구별된 평등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난한 자를 얼마나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으며, 사랑의 법칙 안에서 행해진다면 얼마든지 가치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것은 마음이 넉넉해야 손이 펴진다는 것입니다. 칼뱅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항상 두신 이유가 부자의 넉넉함과 가난한 자의 진실함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부와 가난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는 수단이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 위탁받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찰스 피니는 생활에서 청지기직을 부인하는 것을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만큼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24편 1절이 말하듯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여호와의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농장 주인에게 모든 것을 두고 떠나기 힘드시겠다고 답했고, 집이 불탔다는 소식에는 내게 주어진 책임이 하나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청지기 의식이 없으면 소유를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청지기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복음과 복을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둘째로, 가난한 자들에게 넉넉히 도와주는 일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믿음에서 넉넉함이 나오고, 그때 하나님의 손과 마음이 드러납니다. 캄보디아 목사의 간증에서 보듯, 월드비전이 결핵 진료소와 학교를 세우고 농업을 가르치며 사랑을 전하자 마을 사람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디엘 무디는 등대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단지 비출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나누는 일은 그리스도를 비추는 등대가 되어 복음이 온전히 전해지게 합니다.

나눔이 나와 세상에 복을 가져옵니다 (4,6,10절)

셋째로, 물질의 청지기로서 가난한 자들을 넉넉히 도울 때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넉넉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더 많이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많이 주십니다. 미국은 1933년 대공황 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부가 가장 많았던 해였고, 나눔을 통해 경제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경제에는 언제나 충분하다는 것과 나누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두 원리가 있습니다. 나눔은 도덕적 의무이기 전에 복된 삶의 길입니다. 탄광의 카나리아가 위험을 먼저 알리듯,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이 고통받을 때 그것은 사회 전체에 고통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서서평 선교사님처럼 내 소유가 하나님께 위탁받은 것임을 기억하고 청지기로 살아갑시다.
  • 마음이 넉넉해야 손이 펴진다는 말씀처럼, 가난한 형제에게 인색한 마음을 버리고 손을 펴서 도웁시다.
  •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보고, 교회와 이웃을 위한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천합시다.
  • 나눔을 통해 그리스도를 비추는 등대가 되어 복음이 전해지도록 함께 힘씁시다.
  •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한 이들이 겪는 고통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돌보는 공동체가 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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