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7) 한적한 곳에서 다시 세워지는 삶 (막 1:32~38)
예수님은 밀려드는 일과 무리의 갈채 속에서도 한적한 곳의 기도로 사명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분주함에서 물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회복해야 합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바쁘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항상 시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른 새벽이든 늦은 시간이든 기꺼이 시간을 내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10분도 아깝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자꾸 미뤄진다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만나고 싶은 분이 아니어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휴대폰 알람과 사람들의 요구에는 즉각 반응하면서, 마음속에 울리는 하나님의 알람에는 나중에라며 미루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고된 밤 뒤의 새벽에 기도하신 예수님 (32-35절)
안식일이 끝나 해가 진 뒤, 가버나움 베드로의 집 문 앞에 온 동네 사람들이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데리고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고치셨으니 자정이 넘도록 일하셨고, 육신은 완전히 소진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매우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30대 초반이어서 잠이 부족하면 새벽에 일어나기 힘든 나이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본이 되시려고 보여 주신 모습입니다.
급한 일에 쫓기는 것은 홀로 서지 못해서입니다 (36-37절)
우리는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못 했다고 후회하곤 합니다. 급한 일에 휩쓸리는 이유는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삶을 분주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피하는 것입니다. 다음 날에도 시몬과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고, 모든 사람이 선생님을 찾고 있다고 흥분해서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고 따르는 짜릿함, 곧 대중의 유혹은 지도자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가장 큰 유혹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에게 휩쓸리지 않으셨고, 그 비결은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나눈 조용한 시간이었습니다.
바쁨은 헌신이 아니라 배신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33세에 여한이 없다고 고백하실 수 있었던 비밀이 한적한 곳의 기도에 있었고, 그 기도가 사명에 집중하도록 붙잡아 주었습니다. 시간을 쪼개 관리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삶이 점점 더 분주해지기 쉽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목회자에 대한 책에서 바쁘다는 말은 헌신의 증거가 아니라 배신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바쁜 이유가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허영심과, 가장 소중한 것을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게으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일이 많은 것과 분주한 것은 다르며, 밀려드는 요구 앞에서 예수님의 답은 더 열심히가 아니라 물러남이었습니다.
군중의 박수가 아니라 보내심이 삶을 정합니다 (38절)
어서 무리에게 가시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가까운 이웃 마을들에서도 말씀을 전하자, 내가 이 일을 하러 왔다고 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고, 높이는 군중에게 붙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 앞의 박수가 아니라 한적한 곳의 기도가 사명을 다시 세웠고, 아버지의 보내심이 삶을 결정했습니다. 무리에게서 물러나신 것은 잃어버린 영혼, 곧 우리를 끌어안는 일이었으며 십자가로 향하는 걸음이었습니다. 혼자 기도하셨다는 기록은 마가복음에 세 번, 곧 갈릴리 사역 초기와 오병이어 후 사람들이 왕으로 세우려던 때, 겟세마네에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삶 전체를 한적한 곳의 기도가 지탱했음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응답이며 선교로 이어집니다
한적한 곳의 기도를 종교적 의무나 수행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으셨고, 우리가 아버지를 만나기 원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우리를 더 만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하나님은 쉬지 않고 우리의 만남에 응해 주시니, 우리의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응답입니다. 온누리교회가 큐티를 강조해 온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면 quiet time이 아니라 quick time이 되고, 성경을 분석하는 시간이 되면 꽃을 해부해 향기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이웃 마을과 열방으로 향하는 걸음으로 이어졌듯, 큐티를 가장 잘하는 교회가 선교를 가장 잘할 수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과의 만남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삼읍시다.
- 급한 일에 휩쓸리는 분주함에서 물러나 날마다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홀로 만나는 시간을 가집시다.
- 큐티를 의무나 성경 분석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또박또박 입술로 기도하는 기쁨의 시간으로 누립시다.
- 잃어버렸던 큐티의 자리를 회복하고 싶다면 큐티 학교 수강 등으로 다시 시작합시다.
- 한적한 곳의 기도에서 받은 보내심을 따라 선교의 걸음을 내딛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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