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죄악
들키지 않은 죄까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자기 욕심과 복수를 정당화하는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들키지 않은 죄도 정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들키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죄는 몸속의 병균처럼 영혼을 파멸시키며 세월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편 32편은 죄를 고백하지 않고 감추었을 때 뼈까지 시들 만큼 깊은 고통이 따른다고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죄책감을 잊으려고 술과 쾌락에 자신을 마비시키지만, 정직하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죄를 숨기지 않고 가림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짓는 죄가 가장 악질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짓는 죄가 가장 악질적이고 파괴력이 강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성전과 율법을 독점하고 가장 경건한 척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특별히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녀나 세리의 죄에는 그렇게 분노하지 않으셨지만, 종교적 권위를 빙자한 죄에는 엄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옷을 입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하지 않는지 경계해야 합니다.
신앙의 말씀을 이용해 속이면 안 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누이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당한 일에 분노했고, 이 감정 자체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그 복수를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실행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아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조건을 내세웠는데,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 세겜과 하몰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성안의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순수한 조건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은 속임수였습니다.
복수는 점점 커지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할례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던 셋째 날,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성에 쳐들어가 남자들을 죽이고 하몰과 세겜도 죽였습니다. 이어 그들은 성의 재물을 빼앗고 자녀와 아내들까지 사로잡았습니다. 복수는 받은 것보다 언제나 더 크게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코 해결을 낳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로마서 12장 17절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중보기도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책임을 외면한 아버지의 침묵이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야곱은 딸이 수치를 당할 때도, 아들들이 지나친 행동을 할 때도 나서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사건 뒤에도 그는 자기가 죽게 되었다는 걱정만 했고, 자녀들을 나무랄 뿐이었습니다. 자녀들이 '그들이 우리 누이를 창녀처럼 대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항의했을 때 야곱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딸을 잘 지키고 아들을 잘 가르치는 아버지의 역할을 일깨웁니다. 사람은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신앙적이라고 합리화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들키지 않은 죄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내 욕심과 야망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맙시다.
-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선으로 악을 이깁시다.
- 가정에서 딸을 잘 지키고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는 책임을 다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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