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중보기도의 능력
위기와 고난 앞에서 세상의 힘을 찾기보다 하나님께 나아가 합심하여 중보기도할 때, 하나님은 때에 맞게 응답하시고 천사를 보내 역사하십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고난과 핍박은 악인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의인과 믿는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은 하나님이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인과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도 죄가 없으셨지만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곤과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왜 내게 고난이 오느냐는 질문보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영적인 유익을 얻느냐가 믿음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난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을 눈 뜨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위기 앞에서 사람과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합니다
헤롯은 백성이 기뻐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고, 그의 정치는 여론을 따르고 권력을 지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돈을 쓰거나 권력자를 찾아가거나 시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힘이 있으면서도 그 힘을 쓰지 않고 절제하는 것이 오히려 참된 힘입니다. 위기가 올 때 우리는 사람에게 기대고 세상의 방법을 택하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먼저 하나님 품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 만세 반석이신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위기에서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베드로를 위해 교회가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 피한 다음 두 번째로 할 일은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매달리는 기도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 모여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했으며, 그 기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위한 중보기도였습니다. 개인주의와 교파주의에 젖은 오늘의 교회에서는 이렇게 합심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세미나와 논쟁보다 성도들이 무릎 꿇고 중보기도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은 형식에 그칠 뿐이므로, 하나님과 날마다 인격적으로 대화하는 살아 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응답은 하나님의 때에 오니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때에 오며,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오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째 돌았을 때 성이 무너졌고, 나아만 장군은 일곱 번째 요단강에 들어갔을 때 문둥병이 고쳐졌으며, 엘리야도 일곱 번째 기도에서 손바닥만 한 구름을 보았습니다. 여섯 번째에 포기했다면 그 응답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막다른 절벽을 만났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가도 불가능한 상황을 만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상황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생명이 거두어지는 그 순간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베드로가 두 군사 사이에서 쇠사슬에 묶여 자고 있을 때, 교회가 기도하던 바로 그 밤에 주의 천사가 나타나 옆구리를 치고 쇠사슬을 풀어주었습니다. 천사는 신과 띠와 겉옷을 챙기도록 여유 있게 이끌었고, 문이 저절로 열려 큰 길거리까지 인도한 뒤 떠났습니다. 베드로조차 이것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믿기 어려워했지만,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다만 천사를 숭배하는 것은 잘못이며, 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돕는 영이지 성령 하나님과 같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모든 위기에서 건져 주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위기가 닥칠 때 사람이나 세상의 방법보다 먼저 하나님 품 안으로 피합시다.
- 교회가 합심하여 간절히 중보기도하는 자리에 함께합시다.
- 주변에서 억울한 고난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을 찾아 기도로 품읍시다.
- 하나님과 날마다 인격적으로 대화하는 살아 있는 기도를 드립시다.
- 응답이 더디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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