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원수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1)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경지에 이르라고 하십니다. 이웃과 원수를 편 가르는 생각을 버릴 때 이 사랑이 가능합니다.
이웃을 제 편리대로 해석하면 원수가 생깁니다
레위기 19장 17절과 18절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말씀을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이웃을 피를 나눈 민족과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 단정했고, 그 밖의 사람은 모두 원수이며 하나님의 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방인은 개처럼 취급해도 된다는 논리까지 세운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해석한 것이 가장 큰 죄였습니다.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은 원수를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 세계를 구원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선택을 특권으로 착각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이나 어떤 위치도 특권을 누리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겸손히 섬기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잘못된 선민의식과 민족관은 역사 속에서 무수한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독일은 유태인을 600만 명이나 죽였습니다. 이 모든 비극은 이웃과 원수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스데반, 손양원 목사님은 원수를 용서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 저들이 불쌍합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어 갈 때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고 최후를 마쳤습니다. 1948년 여수 순천 반란 사건으로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잃은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안재선의 구명운동을 벌였고, 그를 자기 호적에 입적시켜 아들로 삼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2년 뒤 공산당에 체포되어 총살당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에게 원수는 없고, 불쌍히 여겨야 할 영혼만 있을 뿐입니다.
원수 사랑은 조건 없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가족 간의 사랑인 스토르게, 남녀의 사랑인 에로스, 친구 간의 사랑인 필리아보다 더 높고 깊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상대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서 주는 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학대하고 배신한 사람까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생명을 다 바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비판과 충고와 채찍은 독약과 같습니다. 공상하는 사랑은 쉬워도 실천하는 사랑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이 사랑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십니다. 이것은 누구나 받는 일반 은혜, 창조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만 복을 받는다거나 저 사람은 예수를 안 믿어서 망했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참된 축복은 구원의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구원받은 자만이 믿어집니다. 이 구원을 깨닫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축복이니, 우리는 이것을 감사하고 노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원수로 느껴지는 사람을 다시 원수가 아닌 불쌍히 여겨야 할 영혼으로 바라봅시다.
- 사랑 없는 비판과 충고를 내려놓고,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 나아갑시다.
-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을 버리고 내가 맡은 위치를 섬김의 자리로 알고 살아갑시다.
-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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