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가서 제자 삼으라 (마 28:16~20)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는 반드시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 앞에 섭니다. 이 명령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졌고,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르라는 부르심은 제자 삼는 선교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해마다 붙는 동물의 기운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 하셨고, 승천하시기 전에는 "가서 제자 삼으라" 하셨습니다. 따르라는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는 반드시 이 명령 앞에 서게 되며, 서지 않는다면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듯, 제자들을 부르신 것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반드시 선교로의 부르심으로 연결됩니다.
갈릴리로 가라: 부르심의 자리와 이방인의 땅 (16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뒤 120km 이상 떨어진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첫째 이유는 제자들이 부름받은 자리를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방향을 알려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누구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되새겨야 합니다.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하신 것과 같습니다. 둘째 이유는 갈릴리가 이방인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폐쇄적인 예루살렘과 달리 갈릴리에는 이방인이 많이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대부분을 갈릴리에서 보내시고 어부 같은 주변인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에도 선교적 의미가 있습니다.
경배와 의심 속에서도 주신 명령 (17-18절)
갈릴리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경배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의심했습니다. 제자들의 경배가 기록된 것은 여기가 처음이며, 선교는 참된 경배에서 출발합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온누리교회를 예배 공동체, 성령 공동체, 선교 공동체로 정의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을 가려내 불합격시키지 않고 같은 명령을 주셨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에게도 이 명령은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 강림 뒤에 변화될 모습을 내다보며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주신 것이므로 순종해야 합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세례와 양육으로 (19-20절)
이 명령은 지상명령, 곧 The Great Commission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동사가 네 개이지만 헬라어 원문에서 명령형은 "제자 삼으라" 하나뿐이고, 가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분사형입니다. 선교는 제자 삼기 위해 가는 것이며, 지리적 경계만이 아니라 문화적 경계를 넘어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 이주민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 옛사람이 죽고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체험이며,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양육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2024년 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 72항도 선교가 제자 삼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충성스럽게 하면 됩니다
이 명령은 열한 제자만이 아니라 의심하는 성도까지 모든 성도에게,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주어졌습니다. 열한 명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하셨으니 포기하는 패배주의나 모든 문제가 우리에게 달렸다는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헤롯과 싸우지도, 극단적 독립운동에 가담하지도 않으시고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만나는 한 영혼을 제자 삼는 일에 충성하면 됩니다. 온누리교회의 1대1 제자 양육처럼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세우면 더블링으로 늘어납니다. 이 명령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교회는 생명력을 잃고 울타리 안에서 유지에만 급급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는 현재의 약속 (20절)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는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예수님이 함께하십니다.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이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 없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코리 텐 붐은 하나님이 돌밭길로 보내실 때 튼튼한 신발도 함께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동행하신 예수님을 영원한 나라에서 다시 만나는 것과 처음 뵙겠다고 인사하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새해 첫 주일을 선교 헌신주일로 지키는 것도 선교사를 후원하며 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이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으로 이어짐을 기억하고 순종합시다.
- 의심과 연약함이 있어도 주님이 주신 명령 앞에 나아갑시다.
- 교회 울타리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복음을 듣지 못한 이웃에게 갑시다.
- 내가 만나는 한 영혼을 제자 삼는 일에 충성스럽게 헌신합시다.
- 순종하는 걸음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며,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후원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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