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하여 울지말라 (눅23:27-31)

2013.03.24이재훈누가복음 23:27-31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도 자신을 위해 우는 여인들에게 동정의 눈물이 아니라 너희 죄와 자녀, 그리고 복음을 거부하는 영혼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우리의 눈물의 이유가 바뀌어야 합니다.

십자가 길에서도 여인들의 울음에 응답하신 예수님 (27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시는 길에서 슬피 우는 여인들을 향해 뒤돌아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형수 가운데는 채찍에 맞아 형장에 이르기 전에 죽는 이가 많았고, 예수님도 끝까지 걸으실 수 없어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온몸이 찢기고 피 흘리시는 상황에서 남기신 이 말씀은 십자가 위의 짧은 단편적인 말씀과 달리 잘 준비된 예언자의 설교와 같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여인들의 통곡에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침묵하며 자기 방어를 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은 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그 사랑과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죄를 위해 울라 (28절)

예수님은 여인들의 눈물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불법 재판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시는데 울지 않는 것이 이상하니, 그 눈물은 선하고 반드시 있어야 할 눈물입니다. 그러나 눈물의 이유는 바뀌어야 합니다. 스펄전의 비유처럼 질병을 치료할 때 치료를 슬퍼하지 않고 질병을 슬퍼해야 하듯, 우리는 예수님을 불쌍히 여기는 동정의 눈물에 머물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죽음을 당하셔야 했던 이유, 곧 너희의 죄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고난주간에 흘려야 할 참된 눈물은 나의 죄로 인한 회개의 눈물입니다.

다가올 역사와 자녀의 미래를 내다보며 울라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을 넘어 다가올 역사의 고통을 내다보셨습니다. 불과 수십 년 뒤에 닥칠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 배경입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기면서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담대하게 외쳤고, 그 말대로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에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모으려 하셨지만 그들은 메시아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나 개인에 머물지 않고, 자녀와 가문, 이 나라 민족의 미래를 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마른 나무 같은 영혼들을 위해 울라 (29-31절)

예수님은 29절에서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복되다 할 만큼 끔찍한 심판의 때가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진노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산을 향해 자신을 덮어 달라고 부르짖을 정도일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영혼들이 바로 그 심판 아래 놓여 있습니다. 31절에서 예수님은 진액이 풍성해 잘 타지 않는 푸른 나무에 자신을 비유하고, 죄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마른 나무에 비유하십니다. 푸른 나무 같은 예수님도 하나님의 진노의 십자가를 지셨는데, 마른 나무 같은 영혼들은 얼마나 큰 진노를 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슬피 울며 중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의 죽음

예수님의 죽음은 완벽하고 특별한 죽음입니다. 원수를 이기는 승리의 죽음이며, 모든 죄인을 진노 가운데서 건져내신 구원의 죽음입니다. 영적인 대수술이자 전 인류를 새롭게 하는 치료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이 고통을 당하고 계시니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눈물이라는 뜻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이번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동정하는 눈물을 넘어 나의 죄를 돌아보며 회개의 눈물을 흘립시다.
  • 자녀와 이 나라 민족의 미래를 품고 우리의 믿음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기도합시다.
  •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한 채 진노를 향해 가는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중보합시다.
  • 잃어버렸던 참된 눈물을 회복하여 이번 한 주간 십자가의 고통에 참되게 동참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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