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며, 진실한 의심은 참된 믿음으로 이어지지만 미움과 악의에서 나온 비판은 마음을 병들게 하고 복음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회개하며 변화를 받아들입시다.
진실한 의심은 참된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2-3절)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 질문은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향한 진실한 갈망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의 믿음을 변호해 주셨습니다.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자 신약의 문을 연 선구자였습니다. 같은 의심이라도 사랑에서 나온 정직한 의심과 미움에서 나온 악의적인 비판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의 말씀처럼 같은 근심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생에 이르고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고, 이는 선하고 참된 의심과 악한 의심을 구분하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미움에 찬 비판은 복음을 거부하게 합니다 (16-19절)
예수님은 이 세대를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에 비유하셨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처럼, 이 세대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거친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금욕적으로 살았기에 귀신 들렸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잘 먹고 마셨기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는 비난을 받으셨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욕도 들으셨습니다. 문제는 행동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와 질투로 가득 찬 그들의 병든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잘해도 못해도 좋게 해석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잘한 것까지도 비판합니다. 그러므로 악의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상황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 인정받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불신앙 (20-24절)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을 베푸신 고라신, 벳새다 동네는 오히려 가장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동네를 향해 화가 있을진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에서 이런 권능을 행하였다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 없이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부스러기만 먹고도 눈물로 회개하고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심판받는 자보다 더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오래 다녔거나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변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합시다
성찬은 주님이 자기 몸을 주시고 피를 쏟으신 사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순결한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듯, 더러워진 영혼으로는 하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님의 몸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쾌락에 익숙한 몸과 탐욕에 젖은 생각, 원망과 미움, 자기 학대와 비교와 절망에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나쁜 습관을 쓰레기통에 버리듯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비참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미움과 악의에서 나온 비판을 내려놓고 사랑으로 사람을 바라봅시다.
- 진실한 의심과 악한 의심을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을 구합시다.
-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을 점검하며 참으로 보고 듣는 자가 됩시다.
- 말씀과 기적을 받고도 머무르지 말고 회개하여 삶이 변화되기를 힘씁시다.
- 쾌락, 탐욕, 원망, 미움을 버리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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