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심은 대로 거두는 징계의 심판 (나 3:12~19)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는 자들의 요새와 군대와 재물은 심판 앞에서 무용지물이 됩니다. 마침내 승리하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다리며 온전히 회개하고 살아갑시다.
감추어도 하나님이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을 대적처럼 여기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몇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꾸미는 일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3장 5절에서 하나님은 치마를 걷어 올려 벌거벗은 모습과 수치를 드러내고 구경거리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감추려는 부끄러운 일과 거짓된 일은 감출 수 없고 하나님이 드러내십니다. 또 하나는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인데, 하나님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요새는 흔들기만 해도 떨어집니다 (12-13절)
12절에서 하나님은 네가 만든 요새들이 첫 열매가 익은 무화과 같아서 흔들기만 하면 먹을 사람의 입으로 떨어진다고 하십니다. 요새는 피하면 안전하리라 믿고 만든 것인데, 손쉽게 점령될 뿐이라는 뜻입니다. 13절에서는 도시 한가운데 있는 군대가 여자들뿐이라고 하십니다. 도시를 지켜야 할 군사가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존재처럼 무력하다는 말씀입니다.
힘과 숫자를 늘려도 헛됩니다 (14-17절)
니느웨 성 사람들과 아수르 제국의 통치자들은 힘과 숫자를 늘리면 안전하고 아무도 자기들을 무너뜨리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새를 강화하고 수를 늘려 보라고 반어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안전하다고 믿던 바로 그곳에서 불이 삼키고 칼이 벨 것입니다. 나훔서에서 불은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합니다. 하늘의 별보다 많던 상인과 메뚜기 떼 같던 파수꾼과 관료들도 어디론가 떠나가니, 군대와 재물과 주변 사람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됩니다. 수고는 헛되게 됩니다.
지휘할 자도 없고 상처는 고칠 수 없습니다 (18-19절)
18절에서 초점은 아시리아 왕으로 옮겨 갑니다. 어려울수록 지휘관이 있어야 하는데, 백성이 흩어져도 그들을 모으고 지휘하겠다는 자가 없습니다. 제거되었든 패배했든 눈치를 보든, 지도자들이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19절 말씀대로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부상은 심각하여, 그 땅에는 상처와 부상과 파괴만 커집니다. 하나님을 대적자로 삼고 살아 하나님이 그들을 대적하시게 만든 자들이 이 일을 당합니다.
소식을 듣고 손뼉 치는 사람들 (19절)
아수르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마다 손뼉을 칠 것입니다. 그들의 끊임없는 악행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에 기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하시고 하시는 일이 옳으시며 마침내 징벌하실 것을 믿고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온전한 회개와 의인의 믿음
나훔서에 니느웨가 나오는 것은 요나서의 후속임을 보여 줍니다. 요나서에서 니느웨는 왕까지 신속히 회개하여 벌을 면했지만, 나훔서에서 이런 일을 당합니다. 그 당시 회개가 진실했더라도 지속되지 못했고 온전한 회개로 열매 맺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완전히 회개하고 청산하여 매듭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어지는 하박국의 말씀처럼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환란 속에서도 최종 심판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거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감추려는 죄와 거짓을 하나님이 드러내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정직하게 살아갑시다.
- 요새와 군대와 재물 같은 힘과 숫자에서 안전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 죄를 순간만 모면하지 말고 온전히 회개하여 완전히 청산합시다.
- 주변의 어려운 일과 답답한 일 앞에서도 마침내 승리하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다립시다.
-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대로 최종 심판하실 하나님을 주목하며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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