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참된 회개(3)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살전 1:6~10)
참된 회개는 마음에 사로잡힌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시며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상을 끊어내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설 때 참된 기쁨과 행복이 회복됩니다.
참된 회개로만 신자가 되며 믿음의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이라는 말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모태로부터 신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참된 회개에 의해서만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적 의식이나 교육으로 신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단의 거짓에 속은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는 평생 참된 회개의 삶을 사는 성도이며, 이 두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의 은혜와 진리처럼 서로 뗄 수 없습니다. 무신론도 하나의 믿음이므로 우리는 무엇이든 믿고 살아갑니다. 참된 회개란 헛된 것을 믿던 믿음의 대상을 참되신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나타난 참된 회개의 열매 (6-7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확신과 성령의 역사로 전해진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그들은 환란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고, 그 삶이 변화되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역 모든 믿는 사람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변화의 이유는 그들에게 참된 회개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는 말씀을 받은 사람을 주님을 본받는 사람으로 바꿉니다.
참된 회개는 우상을 철저히 버리는 것입니다 (9-10절)
우상을 버리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습니다. 장 칼뱅은 인간의 마음이 우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고 했고, 마틴 루터는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마음에는 자기가 만든 우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상은 아무 생각 없이 자꾸 마음이 쏠리는 대상이나, 잃었을 때 깊은 절망과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탐심이 우상 숭배라고 말씀합니다. 어거스틴은 우상 숭배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경배하거나 경배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복까지 빼앗아갑니다.
참된 회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집을 나간 아들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듯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상은 자기 결심과 노력만으로 뿌리 뽑히지 않으며,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듯 또 다른 우상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할 때 우상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기쁨이 없다면 그 안에 우상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상은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십자가 앞에서 끊어내야 합니다
우상을 버리는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쓰레기는 대신 버려줄 수 있어도 내 안의 우상은 내가 십자가 앞에서 결단하고 끊어내야 합니다. 이 일은 복음을 듣고 믿을 때 함께 임하는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독일의 조각가 단넥커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조각하는 데 8년을 보낸 뒤, 큰 대가를 준다는 비너스 여신상 제작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내 마음을 자꾸 사로잡는 몽상과 감정을 살펴보며 내 안의 우상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도구로 쓰려는 마음을 십자가 앞에서 끊어냅시다.
-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우상에서 멀리하고 우상을 끊어버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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