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죄는 계속되다
죄는 심판과 세월이 지나도 뿌리가 남아 계속되므로, 우리는 모두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또 부모와 가족의 허물을 들추지 않고 덮어 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심판이 지나가도 죄의 뿌리는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홍수로 세상의 죄를 쓸어버리셨지만, 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나무를 잘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자라나듯, 죄의 현상은 잠시 없어질 수 있어도 죄의 뿌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노아의 가족은 방주에서 나와 평안을 누렸고,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여 주시며 신실한 약속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번 고생한 일도 금세 잊고, 우리 국민도 큰 사건들을 잘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쉽게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죄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해결됩니다.
노아의 실수는 인간의 본질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8절은 노아를 당시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런 노아가 홍수 뒤 포도주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는 포도주 한 잔의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 죄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은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을 이미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교양 있고 도덕적으로 보여도 속에는 죄가 흐르고 있습니다. 다윗과 노아도 실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며, 인간은 자기 힘으로 의롭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깨끗해져야 합니다.
잘될 때일수록 방심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11-12절)
노아는 홍수 뒤 농사가 잘되고 자녀들도 잘 자라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겼고, 하나님이 다시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보장까지 받은 뒤 자신만만해졌습니다. 자신만만한 사람은 위험합니다. 돈과 건강과 권력이 있을 때 교만이 찾아오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종처럼 부리기 시작하면 이미 끝입니다. 잘될수록 입을 조심하고, 드러나기보다 숨는 연습을 하며, 남모르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 죄의 특징은 고개를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내고 셈과 야벳은 덮었습니다
창세기 9장 22절에서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이는 아버지를 고발하고 비판하며 수치를 드러내는 행동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결국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고, 얼굴을 돌이켜 아버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한 사람은 소문을 냈고, 두 사람은 감싸 주었습니다. 부모의 실수가 있어도 그것을 들추지 않고 덮는 것이 적극적인 사랑이고 용서입니다. 기억하고 따지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허물을 덮는 자에게 축복이 임합니다
창세기 9장 24절에서 27절에서 노아는 깨어나 함의 행동을 알고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는 복수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예언적 원칙입니다.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주는 사람은 대대로 축복을 받고, 아버지를 고발하고 까발려 소문을 내는 자녀는 대대로 저주를 받게 됩니다. 축복은 감싸 주는 데서부터 옵니다. 마귀는 우리의 실수와 허물을 까발리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감싸고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을 십자가로 감싸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의 허물을 덮고 사랑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 모두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합시다.
- 잘될수록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겸손히 나아갑시다.
- 부모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 허물을 들추지 말고 용서하며 덮어 드립시다.
- 배우자의 허물을 따지지 말고 덮어 주며 감싸 줍시다.
- 남모르게 선을 행하고 자랑하지 맙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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