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긍휼을 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외모와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찾아 만나 주시며, 죄인임을 아는 사람에게 참된 구원과 교제를 주십니다. 우리도 비판이 아닌 감사와 긍휼로 서로를 품는 교회가 됩시다.
예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10-11절)
예수님은 세상에서 죄인 취급을 받던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 가서 음식을 드셨습니다. 마태는 직업 때문에 사람들 앞에 떳떳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삶을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고 부르셨습니다. 사람의 속마음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속을 보시고 만나 주십니다.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하며 나아오는 사람을 예수님은 환영하십니다.
예수님은 쉽고 개인적으로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집에서 형식이 없이 편하게 식사하시며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예복을 입고 임명장을 주거나 선언문을 낭독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이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떨 때도 모닥불을 피우시고 함께 먹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위선이 없고 단순하며 실제적이셨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낮게 오실 수 있었던 것은 참된 권위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 권위주의적이지 않듯이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예수님을 초청하면 주님은 직접 만나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마태의 식탁에는 세리, 죄인, 제자, 예수님, 그리고 바리새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서로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이 한 식탁에 모인 것은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도 믿음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다양한 과거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입니다. 교회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역이나 정당, 감정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님, 사랑과 말씀을 이야기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령도 개인이 아니라 120명의 공동체에 임하셨습니다.
비판하는 마음은 감사와 사랑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1절)
예수님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할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감격과 감사보다 비판과 시기가 앞섰고, 예수님을 따른 이유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감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죄인 취급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자랑과 자존심에 매인 것도 바리새인의 병이었습니다. 비판하는 용기보다 수용하고 사랑하는 용기가 더 큽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십니다 (12-13절)
예수님은 의사가 환자에게 필요하듯 예수님은 죄인에게 절대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느끼는 사람이 예수님을 절박하게 찾습니다. 예수님은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시지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형식적인 제사와 집회보다 참된 회개와 형제와의 화해가 먼저입니다. 용서와 긍휼 없는 정의는 칼과 같고, 긍휼은 구원의 원동력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나눕시다.
- 겉모습과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 중심을 바라봅시다.
- 비판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 형제자매와 다투었다면 예배 전에 화해하여 참된 예배를 드립시다.
-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낮은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 교회 안의 다양한 사람들을 품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기를 힘씁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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