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만난 아프리카 (눅10:25-37)

2012.07.01이재환누가복음 10:25-37

율법사의 질문에 답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영생이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 거듭난 자에게 나타나는 사랑의 열매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도 만난 아프리카를 향해 가진 것을 나누며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영생은 행위가 아니라 주님을 만난 자의 열매입니다 (25-28절)

율법사와 부자 청년은 모두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물었지만,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구원은 어떤 행위로도 얻을 수 없고,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랑이 없다면 고백만으로는 참된 구원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과나무에 오렌지가 열리지 않듯, 거듭난 사람에게는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이 샘플이 된 까닭 (30-33절)

강도 만난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들에게는 종교적 이유나 바쁜 사정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성경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을 모범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누구나 동일하게 귀한 존재이며, 신분이나 배경이 구원의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선교적 의미를 가르치는 복음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를 사모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민족과 신분을 넘어섭니다.

사마리아인처럼 불쌍히 여기고 찾아가 돌보는 사랑 (33-35절)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고, 강도 만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선교와 전도는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며, 주님도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상처를 싸매고 자기 짐승에 사람을 태워 자기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사랑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며, 받은 축복은 누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나누고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돌보며 책임지는 것이 영생을 얻은 자의 모습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행한 사랑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사마리아인은 이름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알아주면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처럼, 아무도 모르게 한 구제는 하나님이 아십니다. 세상의 법도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만들어 도움을 외면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돕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강도 만난 아프리카를 향한 교회의 사명

아프리카는 노예무역과 자원의 저주, 국경 분쟁, 전쟁과 질병 속에서 500년 넘게 강도를 당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검다는 이유로 그들을 멸시하고 잡아가고 팔아넘겼습니다. 유엔이나 외부 원조, NGO만으로 그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아프리카의 희망은 사랑하고 아파하며 나누는 교회에 있습니다. 라이베리아의 레이마 그보위처럼 평화를 사모하는 한 여인의 기도와 헌신이 나라를 바꾸었습니다. 서서평 선교사처럼 자신의 것을 나눈 삶이 아프리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을 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신 것을 사용하고 나눕시다.
  •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아무도 모르게 돕는 삶을 살아갑시다.
  •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끝까지 돌봅시다.
  • 블레싱 사하라를 위해 기도하고 나눔과 섬김으로 아프리카를 품읍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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