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동양과 서양_설교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른 문화의 필터로 세상을 보기에 갈등이 생기지만, 기독교 메시지는 문화를 넘어서 자유와 평등, 나와 다른 이웃을 사랑으로 품어 안을 때 참된 글로벌 리더십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필터가 현실을 다르게 보게 합니다
무지개는 나라마다 몇 색으로 나뉘는지가 다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네 색, 세네카는 여섯 색으로 보았고, 아프리카 쇼나족은 두 색으로 나눕니다. 일곱 색이 된 것은 뉴턴과 기독교적 사고의 영향이 크며, 무지개 색깔이 본래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라 문화가 빛을 나눈 결과입니다. 신호등의 초록색을 파란색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문화라는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며, 그 차이를 진리로 착각해 싸웁니다. 문화상대주의와 문화보편주의의 싸움도 여기서 나옵니다.
문화를 넘어서는 메시지가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다
성서는 여러 나라 말로 옮겨지면서 각 문화의 옷을 입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혼돈, 공허, 암흑'은 영어 원문보다 한국어로 읽을 때 세상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러나 문화의 옷을 입은 번역이 곧 복음 자체는 아닙니다. 기독교는 특정 민족의 문화에 갇히지 않고, 이스라엘과 로마와 일본의 문화를 통해 모두를 형제로 묶는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가 있을 때 우리는 타종교와 다른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자유와 평등의 모순을 하나로 묶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구호인 자유·평등·박애에서 박애는 형제애로 번역되었지만 실제로는 동지끼리의 사랑에 머물러 여성과 타국민을 제외했습니다. 자유는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평등만 강조하면 사회주의의 한계에 부딪힙니다. 두 가치를 하나로 묶는 것이 사랑입니다. 참된 지도자는 자유의 편에서 끌고 가거나 평등의 편에서 밀어주는 한쪽에 머물지 않고, 두 가치 사이의 간격을 메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두 손, 곧 받아들이는 손과 정의를 세우는 손이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먹고 씹어 내 것이 되는 진리를 붙잡습니다
한국인은 시간을 먹고 음식을 나누는 문화를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셨고, 이것은 나와 주님의 거리를 없애는 가장 가까운 만남입니다. 천주교가 성체를 입에서 녹여 먹는 방식과 달리, 진리는 어금니로 씹어 내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의학의 T세포처럼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하나로 융합되는 사랑이 기독교의 참된 모습입니다.
교회는 모든 이웃에게 열린 자리여야 합니다
사과는 껍질을 벗기면 빨간 사과와 노란 사과가 구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처럼 사람을 가르는 껍질을 벗기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이방인을 배제하라는 말이 없고, 이웃은 특정한 집단이 아니라 무한한 이웃입니다. 교회가 이방인과 비기독교인을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자리가 되어야 세계를 품는 리더십이 세워집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도 특정 문화의 비극이었으며, 참된 글로벌은 세계가 함께 울 수 있는 문화를 원하는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문화의 색안경을 벗고 나와 다른 이웃을 사랑으로 받아들입시다.
-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 두 가치를 사랑으로 묶는 지도자로 살아갑시다.
- 말씀을 머리로만 듣지 말고 씹어서 내 삶의 양식으로 삼읍시다.
- 교회가 누구에게나 열린 자리가 되도록 우리의 태도를 돌아봅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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