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위에 하신 말씀(2)

2010.09.17하용조마태복음 27:45-53

예수님은 억울한 십자가 고난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침묵으로 받아들이셨고,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죄를 대신 치르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용서, 구원, 효도, 그리고 하나님 사랑의 완성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은 원망 없이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불법 체포와 불법 재판을 받으셨고, 채찍을 맞고 조롱당하셨으며, 피를 쏟고 탈진한 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그럼에도 원망이나 불평, 분노와 배신감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작은 손해에도 쉽게 흥분하지만, 예수님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한마디 원망 없이 불의를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할 말이 없어서도, 십자가를 거부할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이 불평하셨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용서이며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처음 하신 말씀은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못이 박히고 뼈와 살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제비를 뽑고 옷을 나누어 가지는 그 아래에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나쁜 동기를 따지기보다 좋은 점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악한 동기로 오해하고 미워하기 쉽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향해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영혼 구원이며 효도입니다 (26-27절)

예수님은 옆에 있던 강도가 회개하고 구원을 구하자, 오늘 내가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구원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영혼 구원입니다. 또 예수님은 자기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제자에게 어머니를 모시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사람은 고통 중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기 쉽지만, 예수님은 자기 고통 가운데서도 부모를 돌보셨습니다. 주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소홀히 하거나 자녀 교육을 등한시하는 것은 예수님의 태도가 아닙니다. 참된 선교와 교회의 사역은 부모 공경과 자녀 교육을 포함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원망이 아니라 사랑의 외침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얼핏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보면 원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택하실 때부터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계셨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친밀하게 부르셨습니다. 시편 22편은 고난의 절규로 시작하지만 시편 23편의 신뢰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침묵하시고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그 고통을 통과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깊이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의 대가를 치르시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있으시니 그냥 용서하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사망의 형벌을 거치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와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자기 법과 정의를 스스로 어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여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절규는 나를 버리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용서가 힘을 가지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며,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공짜가 아니라 하나님이 대가를 치르신 사랑의 결과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자기를 해친 사람들을 용서하며 살아갑시다.
  • 십자가를 감상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받아들입시다.
  • 고통 중에도 원망보다 침묵과 신뢰로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 교육에 정성을 쏟는 일을 돌아봅시다.
  • 용서와 사랑을 위해 손해와 희생의 대가를 기꺼이 치르는 삶을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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