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오 유다 : 세상을 향한 진정한 사랑 (막 3:16~19, 요 14:21~24)

2026.03.22이재훈마가복음 3:16~19, 요한복음 14:21~24

세상의 변혁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이들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거하시고 그들이 세상 속에 신실하게 임재할 때 일어납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진정한 사랑입니다.

유다, 다대오, 레베오는 한 사람입니다

열두 제자 중 열한 번째 제자는 갈릴리 출신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다대오로 기록됩니다. 마태복음 10장 3절의 일부 사본에는 레베오라는 이름도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 세 이름이 같은 인물이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두세 개의 이름을 가지고 그리스 문화권과 히브리 문화권에서 달리 쓰는 일이 흔했습니다. 유다는 아주 흔한 이름이어서 아버지의 이름이나 지역 이름(가룟 유다)을 붙여 구별했습니다. 다대오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의 테오도토스에서 왔고, 사울과 바울처럼 발음이 비슷한 이름을 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제자는 요한복음 14장 22절에서 단 한 번 질문하는 모습으로만 나옵니다.

베드로, 도마, 빌립은 '우리'를 물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떠나심을 암시하시자 베드로가 불안해하며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습니다. 도마는 그 길을 어찌 알겠느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답하셨습니다.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청했습니다. 세 제자의 질문은 내용이 달라도 초점은 모두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그 뒤 예수님이 14장 21절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시자 네 번째로 다대오 유다가 질문했습니다.

왜 우리에게만 나타나시고 세상에는 아닙니까 (22절)

다대오 유다의 질문은 초점이 '세상'에 있다는 점에서 앞선 세 제자와 달랐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신학적 의미로, 메시아라면 그 왕 되심이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실존적 좌절로, 3년 가까이 따랐는데도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독립 같은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불의를 보는 눈이 남달랐고 예수님이 세상을 바꾸실 분이라 믿었지만, 자기 기대와 예수님의 방식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세 같은 선지자를 기대하며 제2의 출애굽을 바라던 당시 유대인의 메시아 사상과 같은 맥락이고, 열심당원 시몬의 생각과도 통합니다. 그는 폭력을 쓰지는 않았지만 밑바닥에는 같은 생각이 있었고, 일부 라틴어 성경은 그를 '열심당원 유다'로 부릅니다.

예수님의 답은 내주하심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23-24절)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요, 아버지와 내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답하셨습니다. 얼핏 동문서답 같지만 이것이 정답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로마의 통치자를 끌어내리고 유대를 독립시키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종하는 이들 안에 하나님이 내주하심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 영광의 왕관 전에 십자가가 있고, 성령께서 오시며 예수님도 다시 오십니다. 다대오 유다는 변혁이 외부에서 공개적인 현현으로 온다고 보았지만, 예수님은 변혁이 사랑과 순종으로 빚어진 사람들 안에서 내부로부터 시작된다고 답하셨습니다.

세상의 문제는 빛의 자녀에게 먼저 책임이 있습니다

다대오 유다의 질문은 탐욕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강한 선교적 관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전체에서 소수의 택한 사람에게 먼저 나타나시고, 순종하는 그들 안에 임재하여 그들을 통해 세상에 빛을 비추십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도 유대 민족만의 하나님이 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잘못될 때 일차적 책임은 하나님의 자녀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있습니다. 역대하 7장의 말씀처럼, 내 백성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이 그 땅을 고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며 그의 질문을 기각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대오 유다 자신이 답의 일부가 되라는 것이었고, 그는 아르메니아와 에데사 등지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상 속에 신실하게 임재하는 통로가 됩니다

버지니아 대학의 제임스 헌터는 『기독교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To Change the World)』에서 교회의 세 가지 패러다임을 정리합니다. 첫째는 열심당원처럼 세상을 되찾으려는 방어적 대응이고, 둘째는 약한 자의 필요에 먼저 응답하는 문화적 관련성이며, 셋째는 순수성을 위해 세상과 단절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모두 그 안의 원한과 분개심 때문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헌터가 내놓는 대안은 '세상 속의 신실한 임재(Faithful Presence Within)'입니다. 제자들이 원한과 세상의 힘으로 외칠 때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며 신실하게 임재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며, 더디 가는 듯해도 그런 백성이 많아질 때 세상은 하나님의 질서대로 변화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세상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볼 때 남을 탓하기 전에, 빛의 자녀인 나에게 먼저 책임이 있음을 돌아봅시다.
  •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안에 거처를 삼으시게 합시다.
  • 원한과 분개심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지 말고, 세상 속에서 신실하게 임재하는 통로가 됩시다.
  • 더디 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방식을 믿고, 우리가 사는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나타냅시다.
  • 이 나라와 민족이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이들을 통해 변화되도록 기도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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