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죽음을 초월하는 삶 (신24:1-12)
죽음을 초월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가졌으므로,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손해와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세의 소원이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졌듯이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의 타이밍에 응답되니 초조해하지 맙시다.
죽음 앞에서 모두가 작은 존재임을 기억합시다
사람에게는 죽고 싶지 않은 본능이 있어 무엇이든 투자하게 됩니다.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고 거대한 공사를 벌였지만 50세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위대한 황제였어도 죽음 앞에서는 가장 작은 존재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고, 죽음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 누구도 그 정하심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모세의 기도에 주님은 왜 응답하지 않으셨나 (25-27절)
모세는 죽을 때 120세였지만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도 쇠하지 않아 더 일할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평생의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보고 들어가고 싶다는 소원이었고, 그것은 자기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동참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을 보여주시되 너는 강 건너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벌고 공부하고 가정을 이루기를 기도하지만 현실에서 응답이 없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소원을 정한 때에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매정하신 분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시간과 타이밍에 맞추어 이루십니다. 마태복음 17장 변화산 사건에서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자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모세가 죽은 지 수천 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살아생전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죽은 뒤 수천 년이 지나 그가 바라던 땅에서 주님을 만나는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응답이 없다고 초조해하지 맙시다.
죽음을 초월한 사람에게 세상의 가치는 힘을 잃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우리 인생은 죽음을 초월하는 인생입니다. 죽음을 초월한 사람은 무섭습니다. 삶의 기준이 80년, 100년의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에 담기게 되어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삽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세상과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됩니다. 모세가 눈앞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죽음을 초월한 인생을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손해와 희생으로 드리는 삶이 참된 예배입니다
아이티에서 선교사님들은 콜레라 환자를 돌보려고 목숨을 개의치 않고 들어갑니다. 예배를 뜻하는 worship은 worth, 즉 가치를 발생시킨다는 뜻입니다. 가치가 생기려면 손해를 보고 희생해야 합니다. 화려하고 있어 보이게 하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손해 보려 할 때 참된 예배가 있습니다. 항공편 문제로 한 자매가 홀로 남게 되었을 때 멤버 모두가 함께 남겠다고 자원했고, 다른 자매는 비행기를 타지 못한 지체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모습에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죽음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의 가치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을 기준으로 삽시다.
- 응답이 더디 보이는 기도 제목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초조해하지 맙시다.
- 주님을 위해 손해를 보고 희생할 수 있는 삶을 살아 참된 예배를 드립시다.
- 내 이익보다 지체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봅시다.
- 살고 죽는 것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바꿔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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