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2010.09.17하용조마태복음 23:37-24:2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화를 선포하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 때문이지만, 그 말씀의 배경에는 멸망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향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우리는 위선과 의지적인 불신앙을 꺾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 번이나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신 이유의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어서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위선적인 신앙과 용서하지 않은 채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도 우리 속에 있는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은 죄는 하나님이 용납하시고 천국 백성으로 삼아 주십니다.

화를 선포하신 배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공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배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제 관심은 멸망과 심판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으며 건강하고 복을 받는 데 있습니다. 멸망은 영생을 거절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현실일 뿐이며, 하나님은 온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선교사들을 세계에 보내십니다. 예수님이 화를 선포하신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그들을 정말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울며 기다리시는 예수님 (37절)

예수님은 저주를 선포하신 뒤 가슴 찢어지듯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타락하여 살인자가 된 자식을 향해 통곡하는 어머니의 심정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고,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 여러 번 모으려 하셨으나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끝까지 기다리시며, 결국 외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셨습니다.

죄는 의지적인 거부이며, 그 의지를 꺾어야 합니다 (37절)

이스라엘이 지은 죄의 핵심은 하나님의 초청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데 있습니다. 죄는 몰라서 짓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의지로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내가 죄를 짓지 않겠다고 의지를 꺾고,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의지를 꺾지 않으면 죄의 속성이 계속 우리를 몰아가 집과 땅과 인생이 황폐해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진 것이 그 예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39절)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도 소망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유리방황했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11장이 말하듯 이스라엘의 완악함은 이방인이 충만히 들어올 때까지의 비밀이며,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날 소련의 붕괴 이후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기 시작한 것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습입니다.

한 사람의 의로운 신앙이 교회를 세웁니다

한국교회는 크게 부흥했지만 교회 수와 성도 수, 헌금 액수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의로움이 교회 안에 있느냐입니다. 예레미야 5장에서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의를 행하는 자가 있다면 예루살렘의 죄악을 용서하겠다고 하셨듯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소수의 의로운 성도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의 화는 우리를 저주하시려는 말씀이 아니라, 그런 신앙을 갖지 말라는 경고이며 마태복음 5장의 축복으로 나아가라는 초대입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위선과 숨은 죄를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내가 죄의 의지를 의지적으로 꺾읍시다.
  • 용서하지 못한 마음을 돌이키고 용서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 우리 가족과 이웃, 민족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끝까지 기다립시다.
  • 하나님의 사랑을 열방에 전하는 선교에 함께 참여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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