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나를 따르라 (3) 사슴이 알려준 제자도의 비밀 (시 42:1~11)
복음이 주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객관적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통해 삶의 체험이 됩니다. 광야와 침체 속에서도 목마른 사슴처럼 주님을 갈망하고 찬송하며 따르는 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연합의 사실과 삶의 체험을 잇는 갈망
지난 두 주간 제자도의 근거가 복음, 곧 예수님과의 연합임을 살폈습니다. 로마서 6장은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여기는 것은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고 주장하는 일이며, 객관적 사실이 주관적 체험으로 이어지려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이므로 사명은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라고 일깨웠습니다. 주님이 나를 먼저 붙잡으셨음을 깨닫는 것이 제자도의 출발입니다. 시편 42편은 이 사실과 체험 사이의 다리가 우리 안의 갈망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갈망의 근원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
하나님은 우리를 갈망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은 의미를 갈망하고 영광을 갈망합니다. 경쟁해서 상을 주고 축하하는 문화는 오직 인간에게만 있으며, 인간이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갈망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에서 벗어나면 중독이 되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미국 대각성 운동 때 감정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있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1747년 「신앙과 정서」(Religious Affections)에서 참된 신앙에 정서적 반응이 포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시에 모든 감정이 거룩한 것은 아니므로 12가지 분별의 원칙을 설명했습니다.
갈망이 깊어지는 자리는 광야입니다 (1-3절)
시편 42편은 목이 말라 헐떡이며 물을 찾는 사슴으로 시작합니다. 조용한 동물인 사슴의 온몸이 목마른 모습처럼, 우리 전 존재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해야 합니다. 2절의 시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을 찾습니다. 이런 갈망은 안락한 환경이 아니라 가장 척박한 광야에서 깊어집니다. 시인은 세 가지 광야에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적 광야입니다. 3절에서 사람들이 밤낮으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11절에서 이 말은 뼈를 찌르는 고통이 됩니다. 마르틴 루터가 낙심했을 때 아내가 상복을 입고 나타나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고 일깨운 일도 있습니다.
물리적 광야와 영적 침체 속의 건강한 신호 (4-6절)
둘째는 물리적 광야입니다. 6절에서 시인은 이스라엘 북쪽 끝 요단 땅 헤르몬산 부근에 있습니다. 4절을 보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예배 행렬을 이끌던 사람인데 마땅히 있을 곳에 있지 못합니다. 학자들은 압살롬을 피한 다윗과 함께한 고라 자손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셋째는 5절과 11절에 반복되는 영적 광야, 곧 낙심과 불안입니다. 갈망이 없는 매너리즘과 달리 침체는 예배에서 경험한 임재가 없어 안타까워하는 것이므로 건강한 영혼의 신호입니다. 구원을 의심하며 고민하는 성도도 갈망을 가진 것이지 구원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를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불렀고, 성령께서는 이런 사람을 주저앉게 두지 않으십니다.
내 영혼에게 말하고 찬송으로 나아갑니다 (5-6절)
회복은 6절처럼 하나님이 행하신 일, 곧 처음 주님을 만난 기억과 눈물의 기도를 기억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러면 시인은 자기 영혼을 책망하며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명령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영적 침체의 원인이 우리가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자신이 우리에게 말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옛사람과 새사람의 갈등이 있어서(로마서 7장), 새사람이 주도해 말하지 않으면 옛사람의 낙심과 염려가 하루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나는 죄에 대해 죽었고 가지다'라고 끊임없이 선포해야 합니다. 갈망이 익어 가는 자리는 찬송입니다. 5절은 '내가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로 향하는 발걸음에서 찬송하셨습니다.
시편 42편을 체험하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 시편을 가장 잘 체험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크리스토퍼 애쉬는 주님이 광야와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영혼에게 믿음을 설교하셨다고 했습니다. 조롱을 견디신 근거는 아버지를 향한 갈망이었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며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신 것도 그 갈망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는 음성은 가 보지 않은 길로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편 42편을 체험하신 주님이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물을 저장해 두는 낙타가 아니라 날마다 목마른 사슴이며, 홀로 있을 때에도 주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실을 날마다 사실로 여기고 선포합시다.
-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하나님 그분을 갈망합시다.
- 침체와 의심과 불안을 갈망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 낙심될 때 주님을 처음 만난 기억을 되새기며 내 영혼에게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말합시다.
- 예배 때뿐 아니라 홀로 있을 때에도 목마른 사슴처럼 주님을 갈망하며 찬송으로 순종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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