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오직 예수의 이름을 위해 (행 21:1~26)
같은 성령 안에 있어도 의견과 선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주의 뜻은 더 희생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길에서 분별되며, 그 길의 목적은 오직 예수의 이름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같은 성령 안에서도 의견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함께 예수님을 믿는 가정 안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당황하고 분열할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 한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의 결혼을 반대하며 새벽마다 기도했고, 자녀는 심야기도에서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부모에게는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분명히 의견을 표시하고 기도하라고, 자녀에게는 부모가 반대해도 깨어지지 않을 사랑인지 확인하며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양쪽 모두 신실한 사람들입니다. 동일한 성령이 계셔도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주의 뜻을 더 분명히 깨닫는 마지막 과정이 중요합니다.
가라는 감동도 말리는 감동도 성령 안에 있습니다 (11-14절)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려 하자 두로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전했고, 가이사랴에서는 아가보가 허리띠로 자기 손발을 묶으며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방인에게 넘길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누가와 일행도 함께 말렸습니다. 그러나 20장 22절에서 바울 역시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양쪽 모두 성령의 감동을 받았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라 우리를 강제하지 않고 우리의 선택을 무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말리는 마음도 내어드리는 마음도 귀합니다
말린 이들은 바울을 아끼고 오래 사역하기를 바라는 귀한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죽을 각오로 가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선교사 파송식에서는 젊은이들을 장하다며 축복하지만, 내 자녀가 가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고 새벽마다 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 부모의 마음을 육신의 마음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희생하려는 마음이 주의 뜻에 합당하다면, 다른 집 자녀만이 아니라 내 자녀도 헌신하도록 내어드리는 것이 주의 뜻에 합당한 마음입니다. 동역자들은 이런 마음으로 바울의 뜻에 따랐습니다.
바울의 대답에 드러난 주의 뜻에 합당한 태도 (13절)
바울은 "왜 여러분은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붙잡힐 것뿐 아니라 죽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첫째, 바울은 반대하는 동역자들에게 분노하지 않고, 그들의 사랑에 따르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내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분노하면 주의 뜻에서 멀어진 것이고, 따르지 못해 마음 아프면 오히려 가까울 수 있습니다. 둘째,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죽음도 각오했습니다. 1, 2, 3차 여행에서 그를 가장 괴롭힌 이들은 율법을 고집하던 유대인들이었고, 예루살렘은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더 희생하고 더 자기를 내려놓는 어려운 길이 주의 뜻에 합당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더 말하지 않습니다 (14절)
바울이 설득되지 않자 동역자들은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하고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간 까닭은 예루살렘이 은혜의 복음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같은 지도자들도 있었지만,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책망한 베드로의 모습처럼 예루살렘의 문화의 틀을 깨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방인의 관점에서 유대인을 보는 바울이 가야 그 틀이 깨질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을 섬기며 저도 한국교회 안에서만 보지 않고 세계 기독교의 시각에서 볼 객관적 시각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안에만 갇히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됩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을 위해 여러 모양이 된 바울 (17-26절)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동족에게 배척받고 거짓 증인에게 고소당하며 폭도에게 맞았고, 다섯 번 재판을 받았습니다. 반면 로마 당국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를 보호했습니다. 야고보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바울을 환영하면서, 믿는 유대인이든 믿지 않는 유대인이든 가짜 뉴스 때문에 그를 적대시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들은 나실인 서원자들의 비용을 대주어 반감을 줄이자고 제안했고, 바울은 기쁘게 참여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덜 힘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고, 고린도전서 9장 19-22절의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는 사역 철학 그대로였습니다. 디모데에게 할례를 권하고 디도에게 받지 말라 한 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목적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해지는 것이었고, 오직 그 이름을 위해 사는 인생은 고난도 오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서로 다른 의견 앞에서 내 뜻을 관철하기보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며 분별합시다.
- 내 뜻에 따라주지 않는 사람에게 분노하기보다 그의 사랑에 응답하지 못함을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됩시다.
- 더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니라 더 희생하고 자기를 내려놓는 길을 선택합시다.
- 우리 안에만 갇히지 말고 다른 성도와 세계 기독교의 시각에서 내 신앙을 돌아봅시다.
-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 평가와 대우를 내려놓고, 모든 선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선택이 되게 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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