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빌립 : 계산을 뛰어넘는 믿음 (요 6:5~7,14:8~11)
진지한 이성적 구도자 빌립은 계산에 묶여 믿음이라는 변수를 놓쳤습니다. 예수님은 이성을 버리게 하지 않고, 우리의 계산 위에 믿음을 더해 이성을 뛰어넘게 하십니다.
개성을 살려 쓰시는 주님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세상을 뒤바꾸어 놓았고, 지금도 주님을 만나는 모든 이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제자의 삶을 묵묵히 걷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열두 제자는 배경도 기질도 제각각이었는데, 예수님은 그 개성을 없애지 않고 장점을 살려 성령과 말씀 안에서 단점은 제거되고 하나님께 쓰임받게 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제자 빌립도 개성이 뚜렷했습니다. 빌립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큼의 영향력은 없었지만 명단에서 두 번째 그룹의 리더격입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요한복음에 집중되어 있는데, 요한과 같은 벳새다 출신이어서 요한이 곁에서 직접 관찰해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헬라 이름에 담긴 열린 가정 배경
빌립은 안드레처럼 헬라 이름을 썼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헬라의 영향이 컸지만 보수적인 가정은 유대 이름을 지켰고, 필요할 때만 헬라 이름을 함께 썼습니다. 사울과 바울, 나다나엘과 바돌로메가 그 예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헬라 이름만 나오니 가정 배경이 매우 개방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빌립은 '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고,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의 빌립왕에게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빌립왕은 금광 지역을 정복해 그 자금으로 강한 군대를 길렀고, 그것이 아들이 일대를 정복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도시 빌립보도 그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지적 확신으로 예수님을 따른 구도자
빌립은 요한복음 1장 43-45절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세례 요한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예언자들도 기록했던 그분을 우리가 만났소"라고 말했습니다. 기적을 보았다거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하지 않고, 오랫동안 구하던 예언의 그분을 만났다는 지적 확신으로 따른 것입니다. 사람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채널은 감성, 의지, 지성으로 다르지만, 지정의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어야 전인격적인 믿음이 됩니다. 믿는 내용을 분명히 아는 것도 믿음에 포함되므로, 내가 깨달아 동의하며 하는 아멘이 삶을 움직입니다. 한 번 아멘하면 바꾸지 않는 것이 빌립의 장점이었습니다.
어디냐는 물음에 얼마냐고 답한 빌립 (5-7절)
그러나 이성적 판단에 갇히면 그 장점이 약점이 됩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먹이시기 전에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미 하실 일을 아시면서 빌립을 세우려고 시험하신 것입니다. 합당한 답은 장소에 관한 것이어야 했는데, 빌립은 200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하다며 비용을 답했습니다. 많은 무리를 보고 순식간에 계산해 낸 수학 능력은 완벽했지만, 주님의 능력이라는 변수가 빠져 있었습니다. CGN을 시작할 때 돈이 얼마나 들지 아느냐는 질문에, 목사님은 알았으면 못했다고 답하셨습니다. 계산은 해야 하지만 그것에 묶이면 하나님의 역사라는 변수를 잃습니다.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이성의 한계 (8-11절)
마지막 만찬에서 불안해진 제자들이 차례로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디든 따르겠다고 했지만 곧 주님을 부인했고, 의심 많고 잘 따지는 도마는 길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곧 길과 진리와 생명이며 아버지를 알고 보았다고 하시자, 빌립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했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아버지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확인된 것만 확신하는 이성적 현실주의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시며, 자신이 하나님을 완벽하게 계시하는 분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으면 초월과 신비의 영역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계산 위에 믿음을 더하는 제자도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성을 포기하라 하지 않으셨고, 이성이 닿지 않는 자리까지 나아가라 하셨습니다. 제자도는 이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뛰어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위해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믿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고, C.S. 루이스는 이성이 하나님을 판단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끌려가는 안내자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A.B. 브루스는 빌립의 믿음을 충분한 증거로 자라는 확신의 열매라 했습니다. 빌립은 실패한 제자가 아니라 훈련 중인 제자였습니다. 이해하려는 노력은 좋지만 이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교만이며,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계산이 아니라 믿음의 헌신 위에 세워집니다.
삶에 적용하기
- 믿는 내용을 분명히 알고 동의하며 진실한 아멘으로 응답합시다.
- 지정의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내 신앙의 균형을 점검합시다.
- 일을 계산하고 분석하되, 그 계산에 묶여 하나님의 역사라는 변수를 잃지 맙시다.
-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어가면서도, 이성으로 닿을 수 없는 영역은 믿음으로 이해해 갑시다.
- 우리의 신중한 판단 위에 믿음을 더해 하나님 나라의 귀한 도구로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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