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리라 (눅 2:41~52)

2013.12.29이재훈누가복음 2:41~52

예수님은 역사 속에 사라진 분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진리이시며 생명이시기에, 피상적인 지식과 익숙함을 넘어 그분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이 누구신지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 가셨습니다.

피상적인 신앙을 넘어 예수님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침을 전하신 분에 그치지 않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살아계신 인격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여기거나, 예배당에 예수교라는 간판이 있으면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교인 등록증은 구원보증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에 관한 정보를 아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은 다르며, 그분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동행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예수님에 관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고, 리차드 포스터는 『훈련의 기쁨』에서 피상성이 이 시대의 저주라고 했습니다.

절기를 성실히 지켰어도 소년 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41-45절)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과 이어지는 무교절을 빠짐없이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대개는 절기가 끝나면 곧 돌아갔지만, 이 가정은 무교절이 끝날 때까지 성실하게 머물렀습니다. 열두 살은 유대인들이 성인으로 인정받기 전 해로, 그 전부터 절기와 금식에 함께 참여하며 훈련을 받는 나이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큰 친족 무리 속에서 부모는 예수님이 함께 있으리라 여겨 하루를 그냥 지났습니다. 찾았을 때 보이지 않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사흘 만에 성전 뜰에서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출발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남아 계셨다는 것이 본문이 보여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성전에서 질문하고 배우신 예수님의 겸손 (46-47절)

성전 뜰에서 예수님은 선생들 가운데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셨고, 듣는 사람들이 그 깨달음과 대답에 감탄했습니다. 이 장면을 예수님이 율법학자들을 가르치신 것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배우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율법 지식을 완전히 갖고 계셨거나 순간적인 기적으로 지식을 얻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으로서 배움의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죄가 없다는 한 가지를 빼고는 우리와 같은 성장의 길을 걸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더 깊이 알고 싶어 틈나는 대로 율법학자들과 대화하셨고, 그 배움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 자식으로만 여긴 부모의 착각을 돌아봅니다 (48-49절)

마리아는 사흘 동안 마음 졸이며 찾은 자녀를 향해 왜 이렇게 했느냐고 나무랐습니다. 그 말은 부모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지만, 본문은 그 속에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고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라는 사실을 익숙함 속에서 잊고, 내 자식으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찾는 것 자체를 탓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찾는 예수는 어떤 예수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함께 있다고 착각했고, 오늘 우리도 예수님이 주인 되지 않은 예배와 신앙에 머무는 착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품에 머무시고 마땅히 할 일을 다하신 예수님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원문에는 집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문맥에 따라 장소로도, 아버지의 일로도, 아버지의 품으로도 옮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절기의 율법과 성전의 제사가 장차 십자가에서 대속죄물이 되실 일을 예표한다는 것을 아셨기에 아버지의 일 앞에 머무르셨습니다. 예배 후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듯, 아버지의 품에 거하는 사람은 그 임재를 떠날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은 마땅히라는 말로 아버지의 일을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기셨습니다.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 했던 것처럼 33년의 생애를 마땅히 해야 할 아버지의 일에 드리셨기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온전히 자라 가신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성장합니다 (51-52절)

예수님은 부모를 만난 뒤에도 나사렛으로 내려가 부모께 순종하며 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일을 우선하셨지만, 사람의 아들로서의 모든 의무와 관계도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52절은 예수님이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랐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셨다고 기록하여 정신, 신체, 영적, 사회적 성장을 모두 보여줍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육신의 자녀로만 여기며 그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431년 회의에서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시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이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을 살아계신 인격으로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동행합시다.
  • 교인 등록이나 예배 출석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안심하지 말고,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지 돌아봅시다.
  • 예수님에 관한 지식에 머물지 않고 그분을 깊이 아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 자녀를 내 소유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합시다.
  • 예배 후에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러 아버지의 뜻을 묵상하고, 마땅히 해야 할 하나님의 일에 순종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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