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을 넘어선 사랑 (막 14:17-26)

2012.02.26이재훈마가복음 14:17-26

예수님을 배신한 가롯 유다조차 끝까지 경고하시고 기다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도 배신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성찬으로 그 사랑과 용서를 먹고 마시자는 메시지입니다.

배신의 상처를 넘어서는 예수님의 사랑

사랑하던 사람의 배신은 사람에게 가장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깁니다. 시저와 다윗도 가까운 이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악한 배신은 가롯 유다의 배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과 발에만이 아니라 가슴에도 못이 박히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재정까지 맡길 만큼 믿던 제자가 입맞춤을 배신의 신호로 삼았고, 그 대가는 은 삼십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배신은 즉흥적이었지만 유다의 배신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운명의 주관자이십니다 (17-21절)

예수님은 배신을 미리 아셨고, 유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경고하셨습니다. 몹시 괴로워하시면서도 예수님은 유다의 이름을 끝까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름을 밝히면 유다가 해를 입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말하지 않으심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셨고, 나머지 제자들에게도 경계심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회적이었지만, 빵 한 조각을 적셔 유다에게 주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럼에도 변화가 없자 화가 있을 것을 직접 예언하셨습니다.

어떤 죄도 운명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유다를 동정하며 그가 희생자였다고 말하는 주장이 있지만, 어떤 죄도 어쩔 수 없는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배반을 지시하신 것도, 예수님이 부탁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탐욕에 이끌려 스스로 그 죄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간절히 호소하시고 경고하시지만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인격적인 선택을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배신자와 함께 먹으시는 예수님의 성찬 (22-24절)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에도 감사하시며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성경은 먹는 것으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나며, 인간의 타락도 먹는 것으로 왔고 구원도 먹는 것으로 회복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 그분과 하나가 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새 언약의 피입니다. 우리는 이 용서의 잔에 참여함으로 용서받았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원수 앞에 차려진 식탁에서 배신을 넘어섭니다

다윗은 적들 앞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원수가 눈앞에 있어도 하나님은 식탁을 차리시고 함께 먹자고 말씀하십니다. 배신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먹고 그분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배신보다 큰 사랑으로 배신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배신의 상처로 고통받는 성도들이 주님을 먹고 마심으로 그 상처를 넘어서기를 바랍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도 예수님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자신부터 돌아봅시다.
  • 교회 생활에 익숙해져 방심하지 않고 주님 앞에 온전히 서기를 힘씁시다.
  • 세상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살아갑시다.
  • 성찬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용서의 확신을 날마다 누립시다.
  • 배신의 상처를 주님의 사랑으로 품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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