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배신자의 두모습
배신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의지적 선택에서 시작되며, 배신자는 들킬 때까지 위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기회를 주시고 구원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지를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배신자는 들킬 때까지 위장합니다
배신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들킬 때까지 위장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감추고 아닌 척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먹는 자가 배신할 자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그는 내가 아니냐고 말하며 자신을 숨겼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자기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끝까지 위장했습니다. 철저한 위장은 배신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위장이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배신은 의지적 결정에서 시작됩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우연이 아닙니다. 돈 몇 푼은 간단한 이유일 뿐이고, 궁극적인 이유는 예수님을 팔아 넘기겠다는 그의 의지적 결정이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41편에서 내 떡을 먹던 가까운 친구가 나를 대적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배신은 나에게 신세 진 사람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참모 아히도벨도 압살롬을 도와 쿠테타를 꾸몄지만 결국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와 함께 일한다고 해서 모두 내 편은 아닙니다. 불신앙의 배후에는 의지적 자기결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배신을 알고도 끝까지 품으셨습니다 (19-21절)
예수님은 배신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일이 이루어질 때 내가 그인 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의 배신도 막으려 하셨지만, 스스로 선택한 불순종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력으로 강요하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자식이 집을 떠나기로 결정하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고독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돌아오기를 마음 깊이 원하셨고, 그 마음이 심히 민망하셨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배신으로도 바뀌지 않습니다 (20절)
가룟 유다가 배신해도 구원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지금도 동일하게 선포됩니다. 천지가 뒤집어져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입니다. 배신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뒤바꾸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나중에 예수님이 몰랐느냐고 의심하지 않도록, 예수님은 미리 말씀하시고 품으셨습니다. 그 사랑과 진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집니다.
배신은 마귀가 들어오는 길이며 밤은 어둠의 시간입니다 (26-30절)
예수님이 조각을 주신 후 사탄이 유다 속에 들어갔습니다. 마귀가 먼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불순종하고 배신의 길을 선택했을 때 마귀가 들어간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 속에도 선악과를 먹은 뒤 마귀가 들어갔습니다. 유다가 나갈 때 밤이었다는 말씀은 상징적입니다. 로마서 13장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밤의 일을 벗고 새벽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우리 안에 위장하며 숨겨 온 배신의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 알면서도 불순종하는 일을 멈추고 마귀가 들어올 자리를 내어주지 맙시다.
- 성령이 임하실 때 할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예수님을 믿기로 의지적으로 결단합시다.
- 밤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 새벽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우리 인생의 선택과 의지를 주님께 드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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