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송구영신 40일 새벽기도회 24일차 - 부스러기 은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마 15:21~28)
하나님의 은혜는 메마르지 않으며, 응답이 침묵이나 거절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은 옳으시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부스러기 같은 은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내 익숙함과 뜻을 믿음으로 착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교회 문화에 익숙해지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을 믿음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중심에 둔 독이 든 믿음이며, 결국 종교 중독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필요를 채우시는 좋은 아버지이시지만, 자녀가 평생 자기가 원하는 것만 구한다면 합당한 자녀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나의 위치를 깨닫고 응답하는 데 이르러야 합니다. 그때 믿음은 곁길로 새지 않고 온전하며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믿음이 됩니다.
예수님을 칭찬하게 한 믿음은 낮은 자리의 믿음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신 경우는 드뭅니다. 마태복음에서 그렇게 칭찬받은 이는 가버나움의 백부장과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 두 이방인입니다. 반면 베드로는 풍랑 가운데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여 믿음이 적은 자라고 지적받았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기보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발을 내딛습니다. 믿음의 크기는 자기 기준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는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은혜가 메마른 것이 아닙니다 (21-28절)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린 여인은 예수님께 소리쳐 간구했지만, 예수님은 처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기도에 바로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메말랐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메마르지 않으며,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도 은혜를 메마르게 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준비하신 과정이었습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의 침묵기에도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순화시키기 위해 때로 1차적으로 침묵하십니다.
거절 앞에서 분노하지 않고 낮아지는 믿음 (24-27절)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대답하셨고, 이는 차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순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어 자녀의 떡을 개에게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셨는데, 개는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가리키던 보통 명사였습니다. 이 거절 앞에서 여인은 포기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더 겸손한 태도로 나아와 주여 도우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거절을 받을 때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나의 믿음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옳으시다는 고백과 부스러기 은혜 (27-28절)
여인은 주여 그렇습니다, 주님은 옳으시다고 고백하면서도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고백에는 주님이 응답하지 않으셔도 옳으시다는 믿음과,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겸손이 담겨 있습니다. 은혜는 의무가 없는 분이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것인데, 여인은 이 은혜를 은혜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고, 그녀의 딸은 그 시각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오지 않고 침묵하거나 거절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옳으시다고 고백합시다.
- 내 뜻을 이루는 것을 믿음과 동일시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돌아봅시다.
- 기도가 거절당하는 순간 분노하기보다 겸손히 주님께 나아갑시다.
- 부스러기 같은 작은 은혜에도 감사하며 충분하다고 고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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