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고난 터치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받으심으로 고난을 이기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셔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고난을 이기는 길은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과 기도입니다.
두 십자가는 형태는 같아도 본질이 다릅니다
예수님 좌우에 두 강도가 함께 못 박혔습니다. 두 강도는 파렴치한 죄를 범해 로마 법에 따라 십자가형을 받은 범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두 강도의 죽음은 죄인의 죽음이고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 아들의 죽음이므로 두 십자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고 누구를 막론하고 죄인입니다. 같은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을 저주하며 지옥을 택한 강도가 있었고, 구원을 요청한 강도가 있었습니다.](null)
마지막 순간에도 구원을 요청하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 옆 강도는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구원을 요청했고, 예수님은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요청하면 그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구원 여부를 인간이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 회개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받으심으로 고난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며 마귀의 유혹을 떨쳐내셨습니다. 이후 체포되어 앞뒤로 얻어맞고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셨으며, 채찍에 살이 찢기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앞에 담대히 걸어가 몸을 내어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누가 고난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 안으로 들어가셨기에 고난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이 고난 터치입니다.
폭력과 조롱 속에서도 비폭력으로 대하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했고 군중도 함께 희롱했습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얼굴에는 동요가 없었습니다. 순교는 고난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비폭력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폭력을 쓰면 그것은 순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운데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폭력은 무섭지 않고 비폭력이 무서우며, 사랑이 미움을 이깁니다.
하나님의 외면 속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시간 동안 침묵하시다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치셨습니다. 고난의 절정은 하나님의 외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셨고,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캄캄한 절망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버림과 죽음이 있었기에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서 6절은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담당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성공과 박수 속에서도 하나님과 독대하는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가집시다.
- 고난을 피하지 않고 기도로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신앙을 살아갑시다.
- 폭력과 조롱 대신 비폭력의 사랑으로 사람을 대합시다.
- 마지막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부르는 이의 구원을 함부로 판단하지 맙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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