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의 삶 (눅 19:1-10)

2012.07.08김평래누가복음 19:1-10

예수 믿는 삶은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시며, 세리장 삭개오처럼 주님과 사귐을 맺는 사람은 삶이 새롭게 바뀝니다.

크리스찬의 삶은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일 수 없도록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어졌습니다. 에덴에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완전한 사귐이 있었지만, 죄가 들어오면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졌고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3절은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사귀는 것이고, 크리스찬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고립된 세리장 삭개오가 여리고에 있었습니다 (1-2절)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그곳에는 세리장이며 부자였던 삭개오가 있었습니다. 여리고는 오래된 도시이고 지정학적으로 중요해서 돈이 몰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로마 정부를 위해 백성에게서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에 백성의 고혈을 빠는 매국노 취급을 받았고, 유대 사회에서는 세리와 밥을 먹는 것조차 가문의 수치였습니다. 삭개오는 부유했지만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며 마음이 공허하고 쓸쓸한 고립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을 향한 갈망이 사귐의 첫걸음입니다 (3-4절)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아 볼 수 없었고, 키가 작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소경이 눈을 뜨고 중풍병자가 걷고 문둥병자가 낫는 기적의 소식이었고, 여리고 사람들은 모두 뛰쳐나와 예수님을 보려 했습니다. 삭개오는 사람들의 장벽에 막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먼저 달려가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우리의 눈은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움직입니다. 돈 냄새를 맡던 삭개오의 눈이 이제 예수님께 고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거룩한 사귐의 첫 단계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이름을 부르시고 집에 머무십니다 (5-7절)

수많은 사람 가운데 예수님의 눈은 뽕나무 위의 삭개오에게 꽂혔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외모나 재산이 아니라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영혼을 보셨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삭개오의 이름을 오랜 친구처럼 부르시며, 내가 오늘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그에게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은 존재를 인정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삭개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신다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럼에도 사귐이 시작된 삭개오는 인간적인 분노로 반응하지 않고 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과의 사귐은 삶을 새롭게 바꿉니다 (8-10절)

삭개오는 일어서서 고백했습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속여서 얻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움켜쥐던 갈고리 같은 손이 나누어 주는 손으로 바뀐 것입니다. 돈이 인생의 목적이던 삭개오에게 이제 목적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언하시며,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혈통보다 믿음으로 주님과 사귀는 삶이 참된 자손의 표지입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과 사귀는 삶이 구원받은 삶이며, 그 사귐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삶에 적용하기

  • 예수님과의 사귐을 향한 갈망과 호기심을 품고 주님을 바라봅시다.
  • 주님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기쁨으로 문을 열어 예수님을 맞이합시다.
  • 교회 생활의 익숙함보다 예수님과 사귀는 삶이 나에게 있는지 돌아봅시다.
  • 돈과 소유에 붙잡힌 손을 풀고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삶으로 나아갑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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