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원하느냐

2010.09.17하용조마태복음 20:20-28

제자들도 세상적인 성공관과 자리 다툼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에 있고 섬김의 끝은 죽음 속의 부활과 영광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위대함은 자기중심의 야망이다

세상은 타인을 지배하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을 위대하다고 여기며, 야망과 능력과 열심을 가진 영웅을 높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이며, 정신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물질과 현세를 좇는 모습이 많습니다. 정신은 타이틀이고 실제는 물질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적 가치관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작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며 그 죽음 속에 부활이 있다고 미리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함께 지내고도 예수님과 생각이 전혀 달랐습니다.

인사청탁처럼 자리를 구한 제자들 (20-24절)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위해 주의 나라에서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말한 것으로 되어 있어, 친척이라는 관계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들을 더 돌봐 주실 것이라 생각했고, 직접 말하기 창피하니 어머니를 시켜 인사청탁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나머지 열 제자도 이 일에 분하게 여겼다는 점입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그들 역시 높은 자리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말했거나 안 했거나, 들켰거나 안 들켰거나 문제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입니다.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우리 (22-23절)

예수님은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마실 잔이 고난과 죽음의 잔임을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할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헛살았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구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내 생각이 더 옳다고 여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시시하게 여기는 것이며, 육에 속한 인간은 이성과 상식과 경험의 틀로 하나님을 다 포착할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육의 세계보다 훨씬 크고, 영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연민과 베드로가 보여 준 인간의 연약함

예수님은 영적으로 유치한 제자들을 야단치거나 빈정대지 않고 따뜻한 연민으로 대하셨습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신앙이 어린 사람을 존경하고 감싸야 합니다. 제자들이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말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흩어졌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본질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잔을 마시게 된 것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가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난 뒤였습니다. 이 말씀은 좌우편에 앉는 자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제자들이 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섬김이다 (25-28절)

세상의 권력자들은 백성을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나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셨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참된 리더십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며, 남모르게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교회의 으뜸입니다. 높을수록 낮아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이며, 섬김의 끝은 영광이 아니라 죽음이고 그 죽음 속에 부활과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세상의 권력과 지위를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 교회와 가정, 일터에서 남모르게 섬기고 종의 자리에 서는 실천을 합시다.
  • 자기보다 아래 있는 사람을 먼저 섬기며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읍시다.
  • 내 삶의 목적을 공부, 성공, 소유가 아니라 주님처럼 섬기고 생명을 드리는 데 두기로 결단합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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