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
[예배영상] 복음과 하나님의 의 (롬 1:16~17)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셔서 선물로 주신 의이며,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16절)
로마서 1장 16-17절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이며, 마틴 루터가 이 뜻을 깨달으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는데, 복음을 기뻐할 뿐 아니라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로마 황제를 퀴리오스, 곧 주님이라 부르도록 강요받던 시대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을 주님이라 전하는 복음은 부끄러워 보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제자 디모데조차 부끄러워해서 바울이 여러 번 권면했습니다. 오늘도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객관적 진리는 없다고 하지만, 이 주장은 이 명제만은 진리라고 하므로 모순입니다. 복음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해야 합니다.
복음의 확신 없이는 선행도 한계가 있습니다
복음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다릅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믿음의 기초가 서지 않으면, 아무리 선을 행해도 사람들은 교회를 높이지 않습니다. 20년 전까지는 한국교회의 구제와 봉사가 국가 예산보다 많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정부와 기업이 복지 예산으로 사회 구석구석을 살핍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복음을 확신하고 무엇이 진리인지 선명하게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철학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진술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선물입니다 (17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이유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의는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법학도였던 루터는 수도사로 철저히 고행했지만 평안이 없었고,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며 기도할 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심판하는 성품으로만 이해해 하나님을 미워했으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의임을 깨닫고 천국 문이 열린 듯 느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대로 예수님이 순종으로 획득하신 의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전가해 주십니다.
믿음조차 하나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은혜는 구원의 원인이고 믿음은 통로입니다. 구원은 죄인이 하나님의 의로 의롭다 함을 받아 죄에서 자유로워지고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인 까닭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있어야 할 믿음까지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믿음직할 때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심을 성경에서 보며 믿음이 자랍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생긴 믿음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신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의 삶의 문제에 답합니다 (16절)
16절의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요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로다"는 인종과 문화와 세대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구원하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당시에는 영향을 미쳤어도 세월이 갈수록 힘을 잃고, 한 시대에 통한 주장이 다른 세대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동양과 서양, 북반구와 남반구 어디서나 변질되지 않고 전해져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고 거룩하게 변화시킵니다. 교단마다 형식은 달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복음은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종교와 이념도 이룰 수 없는 일이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복음에만 있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살리라는 믿음으로 삽니다 (17절)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우리 믿음으로, 한 성도의 믿음에서 다른 성도의 믿음으로, 믿음의 성장으로 풀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에서 순종을 향하는 믿음으로 자라는 것이라 풀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와 그리스도의 의로만 살 수 있는 죄인이라는 뜻이므로, 그리스도의 의만 자랑해야 합니다. 또 "살리라"에 초점을 두면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영혼이 산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며 뛰어들지만, 우리는 죽어도 살기에 "살기밖에 더 하겠어"라고 말하며 영원히 하나님 앞에 삽니다.
삶에 적용하기
- 세상이 복음을 무시하고 외면해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합시다.
- 복음을 잘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복음이 진리라는 믿음의 기초를 마음에 굳게 세웁시다.
- 나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만 자랑하며 은혜로 살아갑시다.
- 입술의 고백에 머물지 않고 삶에서 실천하는 믿음으로 자라갑시다.
- 죽음 앞에서도 "살리라"는 믿음으로 영원히 하나님 앞에 사는 인생을 삽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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