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표적

2010.09.17하용조마태복음 12:38-45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표적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표적을 구하며 교만하게 버티는 마음은 강팍해지고,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다시 악해집니다. 우리는 부활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마음은 한 번 강팍해지면 끝없이 더 악해집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는 야고보서 1장 15절의 말씀처럼, 마음은 한 번 강팍해지고 악해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더 악해집니다. 죄는 자기가 죄인인지조차 알지 못하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이 자꾸 심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사회의 죄악도 갈수록 더 악해지는 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나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것은 강팍했던 마음이 무너지고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부드러워짐을 붙들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활한 교만으로 표적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돌아섭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악령의 사건이라 하면서도, 이제는 선생님이여라고 부르며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활한 교만입니다. 이미 손 마른 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구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고 독을 품었으며, 상대의 허물이 보이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아와 무릎 꿇는 자를 거절하지 않으시지만, 가면을 쓴 교만한 간구는 듣지 않으십니다.

참된 표적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보여 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었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도 표적이지만, 참된 표적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부활은 생명이며 악과 사망에 대한 영원한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최대의 표적은 이 부활에 참여하는 믿음입니다.

받은 특권이 클수록 더 엄중하게 심판받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억지로 전한 설교에도 왕부터 온 백성과 가축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는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심판 날에 니느웨 백성이 여러분을 정죄할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땅 끝에서 온 남방 여왕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 음성을 들었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유롭게 예배하고 말씀을 읽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동독의 성도들이 숨어서 3시간, 4시간씩 감격으로 예배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주어진 환경을 게으르고 교만하게 낭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귀신은 다시 돌아옵니다

귀신은 사람에게서 나갔다가도 옛집인 사람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집이 비어 있고, 청소되고 장식되었어도 주인이 없다면, 귀신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그 사람을 전보다 더 나쁘게 만듭니다. 이것이 악한 세대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청소와 장식으로 안심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마음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귀신은 떠나고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지만,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마귀는 언제든지 들어옵니다. 교회 문을 나선 뒤에도 마음의 주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매일 마음을 돌아보며 잦은 다툼과 쉽게 치미는 화처럼 강팍해지는 신호를 살펴봅시다.
  • 교활한 교만과 남의 허물을 기다리는 태도를 버리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자리에 서기를 힘씁시다.
  •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며 부활에 참여하는 믿음을 굳게 붙듭시다.
  • 예수님을 우리 집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마음의 안방을 내어드립시다.
  • 주어진 신앙의 환경에 감사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의 문을 굳게 지킵시다.

요약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만든 것이라 실제 설교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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